29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감정원 7층 ‘이용호 게이트’ 특검사무실 앞 복도.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李亨澤)씨는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답변했다. 이씨는 현 정권 들어 대통령의 친인척으로는 처음으로 수사기관에 소환됐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취재진의 시선을 피한 채 먼 곳만 응시했다.
이날 짙은 감색 코트에 밝은 청색 조끼를 받쳐 입은 이씨는 은회색 레간자 승용차를 타고 감정원 건물 앞에 도착, 대기하던 백성일(白盛日) 홍석한(洪錫罕) 변호사와 함께 특검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씨는 그러나 “무슨 대가로 15%의 발굴사업 지분을 받았느냐” “이용호(李容湖)씨의 주가조작에 개입했느냐” “억울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는 “특검에서 다 밝히겠다”고만 간단히 대답했다.
취재진에 떠밀리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는 이씨의 표정에는 피곤함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자신의 보물 발굴 사업 개입 파문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해군 해경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현 정권과 김 대통령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음을 스스로도 느끼는 듯했다.
이씨는 개입 의혹이 제기된 21일 이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 집을 떠나 한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특검팀과 간접적으로 연락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소환을 앞두고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광범위한 기초조사를 벌인 특검팀도 이날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아침 출근길에 “단서 없이 그냥 부르지는 않는다”고 했던 차정일(車正一) 특검의 말에서도 비장한 긴장감이 배어 나왔다.
이씨가 출두하던 날 한 변호사는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 핵심기관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할 말이 없다. 안타까울 뿐”이라고 개탄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