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합격자가 발표된 2002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신체장애를 딛고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에서 법과대에 당당히 합격한 한상근(韓尙根·30)씨의 소감이다.
한씨는 출생 직후 뇌성마비로 하체가 마비돼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한씨는 중학교 때 받은 한번의 다리 수술과 끊임없는 재활훈련으로 혼자 설 수 있게는 됐지만 아직도 걸음을 뗄 때마다 흔들리는 몸은 어쩔 수 없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늘 밝은 웃음과 자신을 잃지 않은 한씨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반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공부도 잘한 모범생이었다.
1994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한씨가 28세의 나이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하게 된 것은 97년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둔 것이 계기가 됐다. 졸업 후 몇 년의 준비 끝에 작은 출판사에 들어갔으나 97년 외환위기로 더 이상 직장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된 것.
판사가 목표라는 한씨는 “우리 사회의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장애인으로서 느꼈던 아픔을 잊지 않고 약자를 위해 일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천성 뇌성마비 2급 장애를 딛고 재수 끝에 이날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이정민(李正民·19)군은 또 다른 ‘인간 승리’의 주인공.
중학교 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아버지가 실직해 가정형편이 어려워진데다 신체마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세대 공대에 지원했다 낙방한 이군은 한때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장애인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격려에 마음을 다잡았다.
쉬는 시간마다 필기노트를 빌려준 친구들과 어머니의 격려는 이군이 학업을 계속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군의 어머니는 이군이 서울에서 재수를 결심하자 고향인 강원 춘천에서 서울로 따라와 공장일을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다는 이군은 일찌감치 전자전기공학으로 전공을 정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대에 지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1등급을 받았다.
이군은 “캠퍼스가 넓어 걸어다닐 일이 가장 걱정”이라면서도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해서 반도체 분야의 1인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