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장기발전계획 중 법과대학발전안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는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는 “사시 합격자 대폭 증원으로 서울대 전체가 고시학원화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인재 배분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비전공 응시자들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한두 차례의 시험만으로 법률가를 뽑는 것은 엉터리 법률인의 양산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고민의 맥락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이 로스쿨 제도.
정교수는 “서울대 법대 교수들의 90%는 지속적인 교육과 시험으로 법률가를 양성하는 로스쿨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다만 도입 시기를 늦춰 일본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신중론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로스쿨은 미국에서만 성공한 특이한 법학교육제도이면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도입하고 싶어하는 제도다. 사시 합격자 3000명 시대에 접어든 일본은 작년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결정했고 2004년부터 신입생을 뽑는다. 독일은 99년 함부르크대에서 시험적으로 로스쿨을 시도했으나 흐지부지돼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로스쿨 도입이 거론됐지만 실질적으로 결정되고 추진되는 것은 아직 없다.
로스쿨 도입을 위해서는 투자재원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로스쿨은 이론과 실무를 한꺼번에 익히는 과정이므로 엄청난 교육인프라의 확장이 불가피하다.
김재형 서울대 법대 교수(민법)는 “법대에서 한 과목을 1주일에 3시간 가르친다고 한다면 로스쿨에서는 10시간을 가르친다”며 “이는 교수의 수가 지금보다 3배 이상 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의 경우 교수가 30여명에 불과하고 조교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하버드 로스쿨에는 교수가 100여명에 이르고 교수마다 유능한 조교들이 딸려있다. 교수가 아무리 많아도 책이 없으면 학생들이 수업준비를 할 수 없다. 서울대 법대 도서관의 장서는 하버드대 도서관의 16분의 1에 불과하다.
로스쿨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당장 사법시험 제도, 학부과정의 법대, 사법연수원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김교수는 “법대에 다니며 고시공부를 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판검사가 될 수 있는 데 누가 굳이 로스쿨에 올 것인가”라며 “설혹 로스쿨 졸업자에게 변호사 자격을 준다 하더라도 사법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이 변호사 자격을 따기 위해 오는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궁극적으로 사법시험, 학부과정의 법대, 사법연수원 등을 없애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로스쿨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