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의 문화교육센터로 일컬어지는 전국 88개 대학의 박물관들이 사실상 주민들과 담을 쌓고 있다. 접근이 어려울 뿐아니라 교체 전시도 제대로 않는다.
대학 박물관의 유물은 대부분 정부와 공공기관이 택지개발 등을 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문화재나 뜻있는 인사들이 기증한 사회적 유산이기 때문에 마땅히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접근 자체가 어렵다
대전 H대 박물관. 전시실의 유물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백자 대접'의 경우 유물의 이름 밑에 '조선시대, 19세기'라고만 적혀있을 뿐이다.
유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 아르바이트생 안내원은 그저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이 박물관은 평일의 경우 오후 5시만 되면 육중한 철문 소리와 함께 어김 없이 문이 닫힌다. 이 시각은 일반 직장인은 물론 공무원들도 사무실을 나오기 전이다.
대부분의 대학 박물관들은 인건비 등을 이유로 직장인들이 그나마 짬을 낼 수 있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문을 걸어 잠근다. 상당수 사립대 박물관들은 같은 이유로 방학 중에는 아예 휴관을 한다.
▽한번 가보면 다시는 안간다
대학 박물관은 예산부족을 핑계로 교체 전시에 인색해 매번 그 유물이 그 유물이라는 지적을 산다.
대전 D대 박물관 관계자는 "1년에 한번 일부를 교체 전시하지만 유물 기증 등으로 특별전이 열리지 않으면 그냥 생략해 버리곤 한다"고 말했다.
영상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 박물관은 과거 유물이 무미건조하게 나열된 '침침한 공간'일 뿐. 부산 국제중 길말선(吉末仙·국사) 교사는 "신세대의 시선을 잡으려면 영상과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전시 형태를 다양화하고 체험코너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 박물관은 곳당 5000여점에서 수만점까지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이 중에는 국립박물관과 차별되는 유물도 적지 않지만 이런 이유들로 외면을 받아 연간 방문객은 곳당 평균 1만명에도 못미친다. 국립박물관인 공주박물관과 비교하면 50분의 1 수준이다.
▽정부와 대학 당국의 관심이 절실하다
대학 박물관이 외면받는 원인은 발굴 중심의 운영체계 때문. 공주박물관 정상기(鄭相基) 학예연구사는 "일본은 발굴을 전담하는 매장문화센터가 있어 대학 박물관들은 기획전시, 초중고교 출장강의 등에 전념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을 탓하는 지적도 높다. 1984년 대학 설립요건에서 박물관 설치 조항을 삭제한 데다 대학평가에서 대학 박물관 항목을 빼버려 대학 당국의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것.
한국박물관학회 이융조(李隆助·충북대교수) 회장은 "일부 대학은 학교 박물관이 정부 부처로부터 특별 예산을 따오면 기존 박물관 예산에서 그 만큼을 제외해 버리는 '횡포'까지 부린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홍남(金紅南·미술사학과) 교수는 "대학 박물관도 다양한 재원 마련을 위해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며 대학 당국은 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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