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팔아 10대 쉼터 운영 송수자씨

  • 입력 2002년 2월 15일 18시 09분


15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동 교회건물 3층에 자리잡은 20평 남짓한 10대들의 쉼터 ‘비전하우스’.

목도리에 귀고리까지 한 재란이(14·여)는 방 한구석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말을 걸어와도 못들은 척 딴전만 부리고 있다.

“재란아, 친구들에게 플루트 좀 가르쳐 줄래.”

이제 겨우 음계를 익힌 정도지만 재란이는 송수자(宋秀子·47·여)씨의 말에 금세 환한 웃음을 띠며 플루트를 집어들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인정받으면 좋아하고 자신감도 생겨서 훨씬 밝아져요. 재란이도 이제야 웃음을 찾은 것 같아 기뻐요.”

비전하우스는 주로 낮 시간에 형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나 결손가정의 10대들을 맡아 무료로 간식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 밤에는 갈 곳이 없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지역의 불우한 10대들에게 ‘천사 어머니’로 통하는 송씨가 비전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것은 약 2년 전 새벽에 길거리를 방황하는 10대 청소년들을 우연히 본 게 계기가 됐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끼니도 거른 채 거리를 방황하는 10대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송씨는 고민 끝에 20년 넘게 운영하던 피아노학원을 정리해 마련한 2000만원으로 교회 3층에 비전하우스를 만들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그리운 10대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베풀고 싶어서였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세상을 뜬 뒤 방황하는 민석(13·가명), 어머니가 제일 싫다는 은주(14·여·가명) 등 이곳을 드나드는 ‘식구’가 벌써 40명이 넘는다.

재란이는 어머니가 3년 전 가출했고 아버지마저 지난해 11월 연쇄방화범으로 구속된 뒤 경찰을 통해 이곳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

식구가 늘다 보니 피아노학원을 정리해 마련한 2000만원도 동이 나 형편이 빠듯해졌다. 세 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송씨는 지금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비전하우스를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교회나 정부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게 송씨의 생각이다. 아이들을 어떤 틀에도 가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점심을 먹고 악기나 십자수를 서로 가르쳐주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껴요.”

송씨는 아이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기타 플루트 피아노 컴퓨터 십자수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낮에 20∼30명의 10대들이 드나들다 집으로 돌아간 비전하우스는 밤이 되자 잠잘 곳이 없는 가출 청소년들로 다시 붐볐다.

“겉모습은 비록 불량해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순수함을 꺼내 보일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줘야 해요.”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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