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안팎에서는 특히 방송위 파행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강 위원장의 기용은 정부 여당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방송을 원격 조종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은 방송위 중립성과 관련해 강 위원장 기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강 위원장 내정자는 그동안 법조계 언론학계 등 10여명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정부측으로부터 가장 유력한 위원장감으로 지목되어 왔다. 지난달 말 변호사 H씨와 MBC 김 사장 등 명망가들이 거론될 때도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방송위 노조에서 주장하는 정책 실패에 따른 공동 책임론과 상관없이 청와대측은 강 부위원장을 적임자로 여기고 있다”며 “하마평이 잠잠해지면 ‘강대인 대세론’이 드러날 것”이라며 그의 기용을 기정사실화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측이 방송법상 보궐위원 임명 마감 기한인 한 달을 꼬박 보낼 만큼 숙고를 거듭한 것은 강대인 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한 뜸들이기였다”며 “이런 시나리오를 청와대의 P씨가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위 노조 등 방송계와 야당은 강 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방송위 노조는 22일 총회를 열고 강 위원장 내정자와 김동선(金東善) 신임 방송위원의 퇴진을 요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방송위 노조는 “방송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두 인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강 위원장 내정자는 부위원장으로서 방송위의 파행적 운영에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 중의 한사람”이라며 “방송의 중립성 및 독립성 확보 등 방송정책의 개혁은 고사하고 더욱 왜곡될 것이라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사장 연임도 정부측 입장에서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선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가 현 정부를 드러내 놓고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정치세력과 교감을 갖거나 자신의 거취와 연결지어 방송을 좌지우지할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재직 1년 동안 방송의 독자성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면에서 노조의 지적을 받아왔다.
김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거취를 집중 거론해온 MBC노조가 22일 기존의 입장을 바꿔 그의 연임을 인정하고 나선 것도 눈여겨볼 대목. 노조는 이날 특보를 발행해 “조합은 김 사장이 유능하고 참신한 새 경영진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김 사장이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그 논거로 “지난 1년간 김 사장의 총체적 경영 실적을 볼 때 경영 능력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MBC의 정체성을 좌우할 올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 양대 선거방송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곧 임원진 일부를 교체하는 등 경영 쇄신을 위한 시도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사장이 정권의 무리한 요구나 노조에 발목이 잡힌다면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방송가의 분석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