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한승/노-사-정 왜 겉도나

  • 입력 2002년 2월 25일 18시 01분


철도, 가스, 발전 등 공기업 3개 노조가 25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파업은 민생과 직결된 사업장에서 양대 노총의 연대파업으로 감행되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올해는 국제 스포츠 행사인 월드컵과 양대 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연초의 연대파업은 올해 노사관계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같이 중대한 연대파업에 대해 마땅한 해결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4대 개혁 중에서 공공부문과 노동부문의 개혁이 가장 부진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개혁의 고삐를 늦출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대통령의 임기말로 이어지는 해에 노동계에 떠밀리는 인상을 준다면 권력누수를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

한편 노동계측에서는 이번에 투쟁의 불씨를 살려 노동계 현안을 타결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특히 최근 노동계에는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 대책 등 주요 과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법적절차 무시한 불법파업▼

파업요인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게 여러 곳에 걸쳐 있는 것도 이번 파업 해결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민영화의 완전철회, 해고자 복직,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참여 등의 문제는 구조개혁과 노동개혁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노사분규가 이같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경우에는 우선 냉철한 자기성찰이 따라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정부는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자주 사용하는 강경 대책에서 벗어나 예방적 전략접근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파업은 작년 말부터 철도 노조집행부의 교체에서 예견되었고, 파업 계획은 올 초부터 대외적으로 공표되었다. 그럼에도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등 주무부처는 파업예방을 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또한 노동계는 파업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생략한 채 실정법 상 불법파업을 감행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철도, 발전, 가스사업은 파업이 엄격히 제한된 필수 공익사업이다. 특히 발전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에 회부되어 있는 상태에서 파업이 감행되었다. 이번 불법 노사분규로 인해 노동계는 대량 구속사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했으며, 임기말 대 노동계 유화국면이라는 싹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제 노정(勞政)은 하루빨리 파업이 종식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구조개혁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가운데 노측의 요구사항 중 합리적인 부분을 적극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정부는 온건 합리적인 협상파의 입지를 살리지 못하고 강경 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사태를 방기했다. 예컨대, 최대 걸림돌인 해고자 복직 문제의 경우에도 인력수요나 해고자 자세전환 등 일정 조건 하에서 전향적인 검토가 표면화되었으면 사태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동계도 민영화법안 국회 상임위 처리 연기, 3조 2교대의 긍정적 검토 등 일정부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파업을 감행한 것에 대해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가스노조의 경우 완전타결 직전 외부 강경 세력에 떠밀려 파업을 감행하게 된 것은 현장 노조지도부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어서 씁쓸하다.

▼노정 머리 맞대고 대화를▼

따라서 노정은 이제라도 파업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먼저 파업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기업 노사의 적극적인 협상의지가 중요하다. 사태가 이렇게 꼬인 데는 사업장 노사가 주도권을 상실한 채 사측은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고, 노측은 외부 강경 그룹에 주도권을 넘겨주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다음으로 정부는 파업이 조속히 마무리되도록 범 정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 이번 요구사항을 면밀히 살펴보면 기획예산처 노동부 건교부 산자부 등이 총체적으로 나서야 해결방안이 도출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노사정위원회의 적극적인 대화 분위기 조성과 현안 해결노력이 긴요하다. 노사정은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대책, 공무원 노조문제 등 주요현안 과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2·25 연대파업이 조속히 해결돼 민생불편과 경제회복 지연 등 후유증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파업은 개별 사업장의 요구사항 외에도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대책 등 현안의 처리 지연에서 비롯됐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노사정위가 대화기구로서 노사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선 한 승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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