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갈등…"표 잃을라" 여야 눈치보기

  • 입력 2002년 2월 26일 17시 53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공기업노조 연대파업의 핵심쟁점인 민영화문제에 대한 본원적 대책마련은 외면한 채 ‘파업자제’라는 구두선(口頭禪)만 외치고 있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여야 모두 ‘공기업 민영화’라는 원론에 찬성하면서도 선거를 의식해 노조원들의 극한 반발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대선 전까지는 민영화관련 법안의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두손놓은 정치권▼

민주당은 26일 원내대책회의를 열었으나 파업 사태에 대한 현황보고만 받았을 뿐 파업의 원인인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박종우(朴宗雨) 정책위의장은 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치자 마지못해 “민영화가 당의 방침”이라며 “국회 건교위에서 4월 공청회를 거쳐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지금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론이 대세다.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노조가 저렇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영화가) 당장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도 이날 ‘공기업 민영화 및 노사관계안정대책 특위’(위원장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를 구성하긴 했으나 엉거주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은 “부채 과다, 선(先)구조조정 미흡, 고용 불안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도외시한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지만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한나라당도 민영화 자체는 찬성하지만 철도민영화의 경우 요금체계 및 시설과 운영의 분리 문제 등 난제를 풀 수 있는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장기적으로 검토하자”는 목소리만 무성하다.

▼대선주자 생각은▼

정치권이 눈치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영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진통이 만만치 않은 데다 그 파장이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노조원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철도노조원은 2만5000여명, 발전 분야 노조원은 5500여명, 가스 분야 노조원은 1800여명.

대선예비주자들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민영화의 기본취지는 찬성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정부 방안은 문제가 많다는 시각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한화갑(韓和甲) 이인제(李仁濟) 김중권(金重權) 정동영(鄭東泳) 후보는 근로자들의 고용이나 복지문제 등의 해결을 전제로 민영화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입장.

반면 김근태(金槿泰)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철도 전력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고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는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본도 국철(國鐵)은 70년대 건강보험 및 쌀수매 등과 함께 3대 적자재정사업이었으나 일본 정부가 노조의 장기적인 극한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를 밀어붙인 결과 지금은 JR(국철의 후신)가 일본 최고의 인기직장이 됐다.

민주당 경선 후보 7인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입장
기호이름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입장
1김중권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인 만큼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2노무현재검토해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3정동영주인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이 제고돼야 한다
4김근태정부와 국회가 더 연구해야 한다
5이인제민영화를 하고 실직자 문제는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6한화갑더 이상 지체하면 안된다
7유종근민영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관련법안은 어떻게▼

철도청 민영화 관련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해당 상임위인 건교위에는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법안 내용은 올해 7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설립해 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건설 및 시설을 통합 관리하고 운영 부문은 내년에 공사 형태의 철도운영주식회사를 설립해 연차적으로 민영화한다는 것.

가스사업 민영화를 담은 한국가스공사법안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역시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가스사업 민영화 문제는 98년부터 국회에서 논의돼 왔으나 아직까지 여야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한국가스공사의 업무 중 도입과 도매 부문을 3개 회사로 분할, 2개는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고 1개는 자회사로 두도록 하며 기존의 가스공사는 존속시켜 배관설치와 공급 등 수급조절기능을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국전력공사는 2000년 12월에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해 현재 민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법에 따라 지난해 발전부문 자회사가 분할된 데 이어 내년에 연차적으로 민영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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