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0교시 수업 폐지해야

  • 입력 2002년 3월 5일 18시 07분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이 한국과 선진국의 고등학교 수업을 비교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새벽 7시부터 잠도 덜 깬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했다. 학생들은 책상에 앉자마자 대부분 엎드려 잠을 잤고 교사들은 깨우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인터뷰에서 거의 아침식사를 거르고 등교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선진국 고교생들은 오전 9시에 밝은 표정으로 등교해 수업에 몰두했다. 우리 고교생들이 이처럼 일찍 등교하는 것은 ‘0교시 수업’ 때문이다. ‘0교시 수업’은 정규 수업에 앞서 한두 시간 먼저 등교해 갖는 자율학습 시간이다.

‘0교시 수업’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에는 0교시 폐지를 촉구하는 글들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 전문가 단체인 ‘어린이 청소년 포럼’은 성명을 발표해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찬반 논쟁을 떠나 가장 가슴아픈 것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아침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새벽 등교를 강행해야 하는 현실이다. 신체에 주는 악영향도 심각하지만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겪고 있는 과중한 입시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우려하게 된다.

아무리 입시경쟁이 치열하다고 해도 0교시 문제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현실적으로 0교시가 학생들의 학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보면 되기 때문이다. 교사들에 따르면 상당수 학생들이 0교시에 잠을 자고 있으며 이후 수업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0교시를 폐지한다면 그만큼 학생들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학습 능률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일선 고교들은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학교가 앞장서 0교시를 폐지하기는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다른 학교가 가만히 있는데 먼저 0교시를 폐지할 경우 지역사회로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않는 학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 눈치를 보느라 불합리한 일을 뻔히 알고도 시정하지 않는 학교 행정의 경직성과 편의주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선 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부나 해당 교육청은 평소 이 문제를 파악하고나 있었는지, 몰랐으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떤 불합리한 일들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 학교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교육당국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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