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학생회장 선거를 끝낸 서울 도심의 사립 A초등학교는 선거기간에 학교 전체가 마치 축제를 맞은 대학 캠퍼스를 방불케 했다.
한 후보는 투표 당일 아침 등교시간에 미키마우스 복장의 20대 여성 도우미 5명을 동원해 ‘유권자’들을 상대로 홍보전을 펼쳤다.
또 다른 후보는 최근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해리포터’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코팅 인쇄물 수백장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유세가 시작되면서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한 후보 어린이가 연단에 오르자 비둘기 떼를 하늘로 날려보내는가 하면 연설 시작과 동시에 5층 건물 옥상에서 대형 현수막이 내려오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의 B초등학교에서는 후보들이 “당선되면 학교에 PC방을 만들겠다” “체육관을 세우겠다” “스쿨버스를 마련하겠다”는 등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 교사들이 이를 말리느라 곤욕을 치렀다.
실제로 이 학교에서는 지난해 전교 어린이 부회장에 당선된 후보가 선거 공약을 지킨다며 농구대를 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선거 열기가 과열되기는 지방 초등학교도 마찬가지. 12일 학생회장단 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창원의 C초등학교 교문에는 국회의원 선거벽보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 컬러 사진을 넣은 포스터가 나붙었다.
이 학교의 한 후보는 “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축구 골대를 설치하겠다는 후보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 D초등학교에서도 지난주 열린 학생회장 선거에서 회장에 입후보한 5학년 어린이가 1.5t트럭에 피켓 40여개를 싣고 와 어깨띠를 두른 운동원들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였다.
선거가 과열되자 학교 측이 내부적으로 선거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후보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 ‘탈법’ 사례도 많다는 것.
서울 강남의 E초등학교에서는 교내에서 사전선거운동과 유세를 금지했지만 후보자들이 친구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해 학급을 돌며 개별 선거운동을 벌여 교사들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초등학교 선거가 과열되는 것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욕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학부모는 “유세 준비를 시키려고 방학 동안 웅변학원에 보내는가 하면 다른 후보 학부모에게 ‘돈도 많이 드는데 뭐하려고 출마하느냐’며 사퇴를 종용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판 흉내내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선 사례’로 학생들에게 간식이나 선물을 돌리고 학교에 비품 등을 기증하느라 수백만원의 비용을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40·대구 수성구)는 “어른들이 선거 때마다 하는 행태를 TV 등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 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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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