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도시지역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가뭄에 목이 타는 이 곳 주민은 하루 식수량을 정해 놓고 먹을 정도로 ‘물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쌀 씻은 물로 설거지하고, 설거지 한 물로 빨래하고, 빨래한 물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채소밭에 뿌리는 난민(難民)같은 생활을 수개월 째 해오고 있다.
8일제 제한급수가 한달 째 계속되고 있는 이 섬에 들어서자 골목 곳곳에 호스가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다. 8일 만에 공급되는 식수가 바닥나면 마을 공동우물의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주민이 설치해 놓은 일종의 비상호스였다.
어장일이 마무리되는 해질 녘이면 소형물탱크를 싣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트럭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저녁밥을 지을 물이 없어 정수장에서 물을 받아 오기 위해 오가는 트럭들이다.
550가구 1550여명의 주민이 사는 보길도는 지난해 9월 10일 격일제 급수에 들어간 이후 3일제, 4일제, 5일제 급수로 물 공급량을 줄이다 지난달 20일 정수장 저수율이 19.1%로 떨어지자 8일제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으로 421만t에 달하던 저수량이 지금은 7만9000t으로 줄어 급수 가능 일수가 120일에 불과해 불가피하게 내려진 조치였다. 그래도 저지대나 정수장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
정수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여항마을 주민은 설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해 생활이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이 마을의 김옥주(金玉柱·70)씨는 “마을 청년들이 정수장에서 가져온 물을 나눠주지만 사흘을 버티기 힘들다”며 “목욕은 고사하고 넉달 째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수장에서 9㎞ 떨어진 백도마을 주민도 ‘물 전쟁’을 치르기는 마찬가지.
이 마을 박경임(朴慶任·68·여)씨는 “한 달이 넘도록 수돗물 구경을 못해 생수나 빗물로 밥을 짓는 일이 다반사”라며 “1주일 전에 내린 빗물을 1t짜리 고무물통 5개에 받아 놓았는데 이제 두 통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고 오염이 덜 된 해수욕장이 많아 주말이면 500여명의 관광객이 섬을 찾고 있지만 상인들은 부족한 물 때문에 매상을 올리지 못해 울상이다.
식당과 민박집을 함께 운영하는 김철수(金哲守·50)씨는 “식당 손님들에게는 물 대신 이온음료를 제공하고 물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날에는 아예 민박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곳뿐만 아니라 일부 내륙지역에서도 겨울가뭄이 계속되면서 식수난과 함께 농사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현재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등 4대 수계의 11개 다목적댐 평균 저수율이 34.9%로 봄 가뭄이 심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포인트 낮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전남지역의 무안과 완도 진도 고흥 등 6개 시군 6만4000여명과 경남 통영시 및 남해군의 6900여명 등 전국적으로 9만여명의 주민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완도〓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