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근지사 구속여파 전북도 행정 사실상 마비

  • 입력 2002년 3월 20일 18시 26분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가 19일 세풍그룹으로부터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 유 지사의 민주당 대선 경선 참여 선언 이후 계속돼온 도정(道政)의 공백과 파행운영이 더욱 심해지게 됐다.

전북도는 20일 “도정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별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채규정(蔡奎晶) 행정부지사가 익산시장 출마 의사를 비치고 있는 데다 강재수(姜宰秀) 정무부지사는 행정 경험이 없는 선거캠프 출신 의사이고, 기획관리실장도 보름 전에야 업무를 맡아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유 지사 측의 지사직 고수 방침에도 불구하고 시민 사회단체와 야당, 일부 시민의 지사직 사퇴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어 95년 이후 7년 동안 계속돼온 ‘유종근 전북호’는 유 지사의 임기 3개월여를 앞두고 사실상 ‘불명예 제대’로 막을 내리게 될 전망이다.

유 지사의 수뢰설이 불거져 나온 11일 이후 전북도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솔직과 청렴이미지를 강조해온 유 지사가 거액을 받고도 이를 부인하는 모습에 분노와 함께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글이 하루 수백통씩 올라오고 있다.

전북민중연대회의와 시민사회단체연대 등 35개 단체는 20일 성명서를 내고 “수년째 도민을 상대로 ‘새 천년 새 전북인운동’을 펼쳐온 유 지사가 뒤로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며 지사직을 하루 빨리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경제학 교수 출신이라는 참신한 이미지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세를 업고 국내 정치경험과 지역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95년 7월 도지사에 취임한 유 지사는 ‘세계로 뻗어 가는 전북’을 기치로 내걸고 해외자본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을 추진해 왔다.

그는 그동안 80여차례 해외를 다니면서 ‘F1그랑프리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 ‘다우코닝사 새만금지역 유치’ ‘스위스 체파스사 온천 투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등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함으로써 “해 놓은 게 없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이것이 임기 중 실적에 대한 조급증으로 이어져 결국은 스스로의 발목을 죄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또 외환위기 초기 극복과정에서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돼 당시 수많은 다국적기업과 금융계 등의 로비의 표적이 돼 수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다 취약한 지역기반으로 인해 유 지사의 선거캠프 출신 일부 인사들이 도정에 참여하면서 각종 인사와 이권 등에 개입하는 바람에 원성을 사 그간의 실적들마저 빛이 바랜 채 묻히게 됐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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