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오조산, 氣 보충위해 쌓은 ‘왕꼬마 5형제’ 山

  • 입력 2002년 3월 23일 00시 27분


인천 계양구 계산동 41번지에 가면 이상한 ‘산(山)’이 하나 있다.

수목이라고는 소나무와 뽕나무, 이런 저런 꽃나무 수십 그루가 전부이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다.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능(陵)이나 동산에 가깝다.

하지만 지름 20m, 높이 5m의 보잘 것 없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오조산(五造山)’이라는 제법 무게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오조산은 3년전 계양구가 계산택지지구 개발로 허허벌판이 돼 버린 이 곳에 주변지역에서 퍼 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人工)산. 이 산과 함께 부근 5500여평 부지가 ‘오조산 공원’으로 조성됐다. 하지만 택지개발 사업으로 사라진 원래의 오조산 역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인공산이었다.

오조산은 비록 오르지 못하는 산이지만 구전되는 내력만큼은 이 지역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다.

오조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인공적으로 만든 다섯 개의 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조산은 인천의 명산인 계양산(桂陽山·해발 394m)과 조선 태종 13년(1413년) 계양산 남쪽 자락에 설치된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와 관련이 깊다.

어느 날 한 지관(地官)이 계양산 부근을 지나다가 ‘부평도호부는 풍수지리상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나 앞이 너무 허(虛)해 관원에게 해(害)가 있겠다’고 했다고 한다. 서쪽(바다)으로는 계양산 자락과 이어진 크고 작은 산들이 있지만 동쪽(서울)으로는 부평평야가 탁 트여 있어 땅의 기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옛날 이 고을 태수가 부평도호부 청사 왼편쪽인 동쪽에 병풍처럼 산을 만들었다는 것.

일설에는 계양산의 기(氣)가 너무 음(陰)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성됐다고도 하고 부평평야를 지나는 굴포천이 조류 영향으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오조산은 현재 복원된 산보다 2∼3배 가량 큰 규모.

1899년(광무 3년)에 편찬된 ‘부평읍지’(富平邑誌) 부록 지도에는 오조산의 위치가 상세히 표시돼 있다.

그러나 오조산은 계산동 일대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 2차례에 걸쳐 택지지구로 개발되면서 하나 둘 사라졌다.

마지막에 사라진 산이 바로 현재 오조산 공원이 조성된 자리에 있었다.

부평문화원 조기준(86) 원장은 “99년 오조산 복원을 위해 옛 산 터를 찾아봤더니 당시 공사 현장사무소가 산을 밀어 버린 자리에 들어서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오조산과 공원도 기존 위치보다 약간 북쪽에 조성됐다는 게 조원장의 설명.

다른 4개 산이 있던 계산동 23, 60, 63, 64번지 역시 지금은 사유지가 됐거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오조산이 사라져 버린 탓인지 실제 1994년에는 ‘세무비리 사건’이 발생, 당시 인천 북구와 부천시의 많은 공무원들이 해(害)를 입기도 했다.

인천향토문화사학회 이형석(65) 회장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유물 유적이 많다”며 “늦게나마 오조산이 복원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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