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공계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느끼는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 85학번 고교 동창생 4명이 한 자리에 모여 얘기를 나눴다.
▽사회〓대학 졸업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김용준〓대학원 졸업하고 7년 정도 회사에 다닌 뒤 2년 동안 학원강사로 일했다. 그 후 3년 넘게 공부해서 변리사가 됐다. 기술자로서 재미있게 일했고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지만 나이 들어서는 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켜주지도 않을 테지만….
▽차성수〓대학원 마치고 기업에 들어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순수과학(지질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 월급을 조금 받더라도 계속 공부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길이 없는 게 현실이다.
▽박경수〓졸업 후 1년 정도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조교 생활도 하다가 2년 전 선후배들과 벤처기업을 차렸는데 도박하는 기분이다. 미래가 좀 암담하게 느껴진다. 사법고시를 왜 보지 않았나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전재석〓인턴부터 12년째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 대로 지낼 만하고 다른 생각은 별로 안 한다. 곁눈질할 능력이나 시간도 없고….
▽김=딴 데 신경 안 쓰고 산다는 것 자체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으로서는 부럽게 느껴진다.
▽사회〓주변에 있는 이공대 출신들의 생활은 어떤가.
▽박〓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10년 근속하고 연봉 2500만원 이하인 동기가 있다. 연봉 5000만원 넘는 사람은 드물고 4000만원도 잘 받는 편이다.
▽김〓학력고사 327점으로 물리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후배는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뒤늦게 기업체에 들어갔다.
▽차〓수학과 출신 가운데 잘된 경우를 보면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수석하고 교수하는 사람말고는 내가 아는 한 다 학원강사다.
▽박〓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동기는 학위 과정을 포기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나갔다. 그게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전〓우리 때 물리학과 정원이 70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정도 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박〓서울대 공대 나와서 연구자로 성공한 사람은 교수밖에 없다. 87학번 공대 후배가 온라인 게임업체 리니지 사장인데 그 사람을 공대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친다.
▽사회〓왜 이공계를 선택했는가.
▽김〓당시 이공계 출신을 양성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과학자가 되는 것을 반겼기 때문이다. 공대 출신들은 희소가치도 높았고 대우도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나았다.
▽박〓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다 이과에 갔고 또 공대에 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별 생각 없이 그 흐름에 따랐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과 전교 1등은 대개 다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전〓그렇다. 공대 나온 동기들은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 17년 후에 집도 못 살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차〓과학자가 되고 싶어 지질학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 독일 과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우리 때만 해도 수입보다는 사회적 가치, 직업 윤리 등을 고려해 학과를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국민윤리 교과서에 속았다.
▽사회〓우리 나라 이공계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차〓40대에 기술자로 남으면 도태되거나 해고된다. 살아남으려면 관리자로 변신해야 하지만 연구만 하던 사람이 그러기가 쉽지 않고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월급쟁이의 별이 이사라면 연구소장은 연구원의 별이다. 그러나 ‘떨어진’ 별이다. 30대 때는 일반 회사원과 비슷한 생활을 하지만 연구만 계속하면 40세도 보장이 안 된다.
▽차=외국 엔지니어링업체와 파트너로 일하는데 60살 넘은 엔지니어가 많다. 외국은 실력만 있으면 전문화된 작은 회사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 나라는 공무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등 실력만으로 승부를 걸 수 없다.
▽김=미래를 생각하고 변리사가 됐는데 회사에서 하던 일보다 많이 힘들긴 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개업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차〓사람에게 중요한 게 희망인데 그 희망이 없다는게 이공계 위기의 본질이다.
▽사회〓다시 대학에 간다면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자녀들은 어디 진학하길 바라는가.
▽박〓그래도 공대를 지망하겠다. 대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 우리나라에서 공대를 나와 제대로 공부하고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길은 교수 뿐이다. 우리 아이는 치대나 한의대에 갔으면 좋겠다.
▽전〓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대는 안 간다. 내 아이의 의대 진학도 반대다. 훈련 과정이 힘들고 비인간적이다.
▽차〓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다. 내 아이는 국제기구 등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대학 진학은 잘 모르겠고 우리 아이는 의대로 갔으면 좋겠다. 아내가 의사인데 내가 거쳐온 길이나 현재 생활을 봐도 그게 더 낫겠단 생각이 든다.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대담 참가자▼
전재석(全在錫·37) 을지병원내과과장·의대85학번
차성수(車誠洙·36) SK건설 과장·지질학과 85학번
박경수(朴慶秀·35) 벤처기업가·기계설계학과 85학번
김용준(金容俊·36) 변리사·항공우주공학과85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