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째 동아일보 독자인 황대욱(黃大旭·92·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사진)옹. 1940년 8월 10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동아일보가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1일부터 복간된 뒤 동아일보를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빠짐없이 곁에 두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황 옹을 아예 ‘동아일보’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고령인데도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신문도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초지일관하는 자세가 부족해. 특히 정치인들은 입으로만 떠들고 변덕이 심해요. 그러니 나라가 어수선한 거야. 시골이지만 동아일보를 보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이 훤히 보여.”
황 옹은 서울에서 중동중학교에 다니던 18세 때 역도선수로 활약하던 일이 동아일보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봄이면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역도대회가 열렸어요. 내가 몇 번 우승했거든. 그때 동아일보 기자가 사진도 찍고 여러 가지 물어보던 기억이 나요. 그게 동아일보와 첫 인연인 셈이지.”
한때 사상범으로 몰려 일본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던 황 옹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더 이상 학업이 어렵다고 판단, 20세 때 고향으로 돌아갔다. 광복 이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동아일보를 보기 시작했다.
황 옹의 거처인 안방에는 53년 휴전협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약 48년 동안의 신문이 가지런히 정리돼 쌓여 있다. 45년 12월치부터 8년 동안의 신문은 6·25전쟁 때 피란 갔다가 돌아온 사이에 분실됐다.
“동아일보가 손기정(孫基禎)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을 일으킨 건 대단한 용기야. 군사독재 정권 때도 권력에 아부하지 않은 신문은 동아일보뿐이야. 이런 건 국민이 잊어서는 안 돼. 동아일보가 애국을 많이 했어. 그래서 나도 초지일관 동아일보를 지키고 있는 거야.”
11남매를 둔 황 옹은 낮에는 돋보기 없이도 신문을 읽을 정도로 건강이 좋다. 함께 살고 있는 일곱째 며느리 정정순(鄭貞順·40)씨는 “시집와서 18년 동안 시아버님께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아일보를 애지중지하시는 모습을 보아왔다”며 “시아버지께서 평소 ‘내가 없더라도 동아일보는 계속 모아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대로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석당(姜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