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창의성이다]아이디어 뱅크 전유성의 말말말

  • 입력 2002년 3월 31일 21시 29분


“저는 동아일보 이은우 기자라고 합니다. 창의성에 관해 전유성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저는 인터뷰료를 받아요.”

“네? …!”

“말은 제가 하고 글은 기자가 쓰니까 일반 원고료의 절반만 주세요.”

(이렇게 인터뷰가 성사됐다)

이〓전유성씨는 연예계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꼽히는데요. 기발한 생각을 하는 비결이라도 있나요?

전〓비결이 있겠어요?. 그냥 하루 종일 생각하는 거예요. 늘 후배들에게 남들보다 15분만 더 생각하라고 얘기합니다. 왜 버스타고 갈 때 멍하게 있습니까?. 버스 안에 있는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해봐야지. 버스 안에 남녀가 각각 몇 명이고, 그래서 나랑 맺어질 여자는 누구인지 살펴 봐야죠. 재미있잖아요.

이〓한국은 사회분위기가 창의성을 억누르는데요. 유행하면 모두 따라하고, 모두 명문대학에 가려고 애쓰고. 남자들은 군대에서 ‘시키는 데로 하라’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잖아요.

전〓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지요. 남들처럼만 하면 기본은 된다고들 하죠. 아닙니다. 남들 따라 하면 도태됩니다.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정을 맞아야죠. 정을 맞아보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정을 맞지 않으려고 남들 따라하는 것이 창의성을 억제합니다.

이〓주변을 살펴보면 다들 아이디어는 많은 것 같아요.

전〓저보다 기발한 친구들은 개그계에도 부지기수입니다. 누구나 기발하죠. 실천에 옮기는 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심야극장 심야볼링장 등은 제가 가장 먼저 시도해 성공한 사업입니다. 남들도 생각은 했겠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죠.

(갑자기 전씨는 날씨가 좋다며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인사동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의 작은 출입문에 기대섰다. 그는 연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창의성은 부족해도 다른 재주가 돋보이는 사람도 많은데….

전〓한 때 아이디어가 최고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제는 아닙니다. 저마다 역할이 있죠. 창의적인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이를 완성하는 거죠. 게으른 사람이 아이디어는 더 많아요.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귀찮은 게으름뱅이가 엘리베이터를 생각해냈을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만든 사람은 아마 공부 잘하는 사람이었겠죠.

이〓한국 기업들도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내 아이디어도 공모하고 직원들의 창의성을 살려주려는 노력도 많이 하죠.

전〓아직 멀었어요. 높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광고 시안을 네 개씩 만들어 최종 결정은 사장이나 회장이 하잖아요.

이〓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독서나 여행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전유성씨는 98년 교보문고에서 가장 책을 많이 산 5명에 꼽히기도 했죠?

전〓독서나 여행도 도움은 되겠죠. 그러나 부지런히 생각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요. 참, 모두 창의성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구태의연한 사람도 있어야죠.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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