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주 가정지원장 논문 “性전환자 호적 고쳐줘야”

  • 입력 2002년 4월 2일 18시 11분


‘몸과 마음은 여성(남성)인데 왜 법적으로 남성(여성) 딱지를 뗄 수 없는가.’

연예인 하리수씨의 등장과 함께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정정 요구가 높아 가는 가운데 현직 부장판사가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종주(高宗柱) 부산지법 가정지원장은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성전환수술로 인한 호적공부상 성별의 정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헌법상 인간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위해 성전환자들에게 호적 정정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 지원장은 “인간의 성별은 정신적, 사회적 성(gender)과 생물학적인 성(sex)이 일치할 때 비로소 구분할 수 있는 것”이라며 “법원은 지금까지 사회적 성 개념을 무시하고 생물학적인 성만을 강조해 성전환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인권 보장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고 지원장은 “성전환자들이 엄연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장애 이해와 극복에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성전환특별법의 제정이나 현행 호적법상 호적 정정 허가 요건을 확대 해석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미혼 △만25세 이상 △생식 능력이 없을 것 △반대의 성에 맞는 사회적 행동 △성전환수술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국내 성전환증 환자는 4500명가량이며 80년대 말 성전환수술이 도입된 이후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은 공식적인 통계로만 4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원이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정정을 허가한 경우는 90년 청주지법과 대전지법 천안지원 결정 등 3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성전환자들이 취업이나 사회생활 등에 큰 불이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행법이 성염색체 형태를 남녀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 법원은 96년 성전환 여성 강간 사건에서도 “여자의 외형을 갖췄더라도 성염색체가 남성이므로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동성애자 인권연대 임태훈 대표는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대부분은 물론 터키나 이스라엘에서도 70년대 후반부터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이들의 법적인 신분 전환을 해주고 있다”며 “현행 호적법에 대한 헌법소원 등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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