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만 보면 참을수없어…" 실연당한뒤 30년간 7차례 절도

  • 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04분


홧김에 훔친 고추 한 포대 때문에 30여년간 틀어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최모씨(64)와 고추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73년. 35세이던 최씨는 당시 만나던 여성에게 실연당하고 낙태수술 비용까지 요구받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고추 한 포대를 훔쳤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그 후 감옥을 나온 뒤부터 고추만 보면 자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충동이 생겼다. 최씨는 유랑걸식을 하면서 고추에 손을 댔다. 최근까지 고추를 훔치다 절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만 7차례.

그는 다행히 가족을 다시 만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해 9월 산책을 나갔다 우연히 고추자루를 보게 되자 또 다시 이를 훔치고 말았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이성룡·李性龍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최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치료감호 및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상습절도’로만 처벌한 과거 판결과 달리 정신이상 때문에 판단 능력이 약해진 점을 인정한 것.

재판부는 “과거 범죄 경위 등을 따져볼 때 참작할 정황이 많은데다 정신과 의사의 감정결과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돼 치료감호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변호를 맡은 문정환(文正丸) 변호사는 “법원이 처음 실형을 선고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실형 선고의 후유증이 최씨의 이후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엄정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경미한 범죄의 초범일 경우 실형 선고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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