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 건립 표류…95년공약 경제논리 밀려 표류

  • 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09분


1995년 문민정부가 건립을 약속한 국립자연사박물관이 관련 부처의 이견 때문에 예산 확보는커녕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수년 째 표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업 자체가 백지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박물관 후진국’〓인류의 문화 유물과 동식물 표본 등을 수집 전시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자연사박물관의 숫자는 선진국의 경우 인구수에 비례해 건립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을 비롯해 자연사박물관이 1100여개에 이르고 독일도 6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자연사박물관연구협회 이병훈 회장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는 인구수(4700만명)를 감안하면 170∼180개의 자연사박물관이 있어야 하는데 국제 통계에 의하면 국내 자연사박물관수는 0개, 북한은 1개로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희대 등의 대학 자연사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동식물 표본 전시는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경제 논리에 희생되는 박물관 사업〓국립자연사박물관은 95년부터 3년간 기획 연구가 진행되다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연구 사업에 대한 예산도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그 후 기획예산처는 2000년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대한 국고 지원의 타당성 조사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결과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았다.

KDI는 보고서에서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시설, 부지의 과다 책정과 운영비 과다 계상 등으로 타당성 도출이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박물관 사업은 국가 자연유산의 보존과 연구 측면에서 일종의 문화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립자연사박물관 사업은 지금까지 한푼의 국고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장기 과제로 분류되었다. KDI는 대신 “이 사업은 경제논리와는 별도로 중요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만큼 환경부가 추진하는 생물자원보존관과 과학기술부가 추진 중인 국립서울과학관과 연계해 중복 투자를 피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부처간 이견〓KDI의 권고대로 추진하려는 학계와 민간단체의 움직임은 각자 사업을 추진하려는 각 부처의 ‘부처이기주의’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물자원보존관은 우리나라 생물자원의 연구와 표본 수집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지도 수도권 매립장 부근에 결정됐다”며 “전시와 교육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과는 사업의 성격이 다르다”고 못박았다.

최근 경기 과천시에 국립서울과학관을 이전해 건립키로 확정한 과학기술부는 국립서울과학관 부설 자연사관을 건립할 예정이나 규모나 내용 면에서 자연사박물관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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