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만 유통되는 논문을 한국에서는 잘 모를 것으로 생각했는지 주(註)도 달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대로 베끼는 것이다.
연세대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한 일본인 선배가 1998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한국인 사학자가 일본의 논문을 표절했다. 한국 근대사(일제강점기)에 관한 논문이었다. 그때 내가 지도교수에게 표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도교수는 논문을 표절한 학자와 친구였다. 그 지도교수는 나에게 문제 삼지 말고 만나서 함께 잘 해결하자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한국인 학자의 논문이 책으로 나왔다. 그 책에는 그저 짤막하게 ‘일본 논문을 참고했다’는 언급만 들어 있을 따름이었다.”
한국에선 논문을 표절하고도 그 논문을 보지 않았다고 우기면 그만인 것 같다. 우긴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설령 학자가 자기 분야의 논문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도 학자로서 잘못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풍조가 정착돼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 연구 분야의 경우, 한국 학자들이 일본 논문을 표절하는 사례를 종종 보았다. 일본에도 논문 표절 사례가 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뒤처리는 한국보다 엄격하다.
한국에서 표절 문제가 그치지 않는 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논문 쓰기의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견해와 남의 견해를 어떻게 구분해 표현해야 하는지, 남의 의견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엄격함에 대한 훈련 부족이다.
아울러 나의 의견이 남의 의견과 다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표절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 페어플레이가 나오고 그에 맞는 객관적 기준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시노하라 히로가타
(篠原啓方·32·일본인 유학생·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정리〓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