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고시제 개선론’

  • 입력 2002년 4월 4일 18시 11분


공무원들의 채용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행정시스템과 기능이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부분 고시제도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얼마전 발표한 ‘비전 2011 보고서’에서 “변화하는 행정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고등고시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각 부처가 수요에 따라 고급 공무원을 상시 채용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현행 고시제는 과거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한꺼번에 뽑아 각 계열사에 배치하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기업들은 이미 대부분 이 제도를 없앴다.

숭실대 오철호 교수(행정학과)는 “현행 고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공직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제대로 뽑을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공직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대학원 등에서 기초 소양교육을 받은 뒤 현장실습 인턴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 “영어 등 외국어 능력 평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고시제도가 있는 일본은 고시합격자를 ‘채용 후보자 명부’에 등록한 후 각 부처의 하위 직급에서 업무를 익힌 뒤 정식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제(PMI)’는 매년 200여명의 대학원 졸업자들을 뽑아 2년 동안 연방정부에서 인턴으로 근무케 한 뒤 공무원 임용 여부를 결정한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매년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고시 합격을 위해 실제 공직에서는 쓸모가 없는 지식을 외우고 있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제도는 더구나 공직사회의 계급제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어 조직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폐해를 낳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시제도를 통해 공무원들이 기수별로 서열화함으로써 수직적인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공직사회의 폐쇄성을 완화하고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개방형 임용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제도가 유명무실해져 공무원의 조직 개혁이 쉽지 않음을 입증했다. 110여개 개방직 가운데 민간인이 선임된 경우는 15%에 불과하고 그나마 조직의 배타성과 2∼3년의 임시직이라는 특성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 교수는 “대기업은 조직의 유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업무에 따라 팀을 운영하고 있다”며 “공직사회도 직무별로 인원을 재배치해 수평적인 조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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