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인사 방식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법조계 안팎에서 꾸준히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현직 판사가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더욱이 문 부장은 “잘못된 법관인사가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강한 논리로 대법원을 압박했다.
93년 방희선(方熙宣·현재 변호사) 판사가 대법원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낸 적은 있지만 이는 방 판사 개인의 인사상 불이익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당시 방 판사의 헌법소원은 각하됐다.
사법부의 법관 인사시스템은 검찰과는 달리 아주 단순하다.
법관은 신규임용 때부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토대로 ‘서열’이 정해진다.
동기생이 100명이면 1등부터 100등까지 성적에 따라 정확하게 가려지며 이 서열을 토대로 15∼20년 동안 근무지와 보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어진다.
법관으로서 결정적으로 승부가 갈리는 것은 차관급인 고등부장 승진 때다. 고등부장은 한 기수에서 보통 10∼15명이 승진하며 경쟁률은 3 대 1 정도.
고등부장 승진에서는 15∼20년 동안 이어진 법원장 등 상급자의 인사고과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판사들은 ‘희망’을 잃고 대부분 변호사로 개업한다.
문 부장이 문제삼은 것은 이 부분이다. 법원 상층부의 자의적인 평가로 고등부장 승진자가 걸러지기 때문에 판사들이 인사권자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위의 눈치를 살피는 ‘눈치 판결’이 반복되고 결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 부장은 “인사제도의 관료화가 심해져 상하관계를 봉건적 군신관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용호(李容湖) 게이트’ 사건의 특별검사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승진이나 보직에 신경쓰지 않는 특별검사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 부장은 사건처리율 등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법관을 평가하고 그에 대한 당사자의 반박을 허용하는 방식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문 부장의 문제 제기에 대해 상당수의 법관들은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 방식이 너무 급격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므로 상급자 등에 의해 꾸준히 자질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판사들의 분발을 촉진하는 경쟁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은 문 부장의 주장에 대해 “인사제도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