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으로 본 문제점]法심판대 오른 법관인사 시스템

  • 입력 2002년 4월 7일 18시 22분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문흥수(文興洙) 서울지법 부장판사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사법부 인사 시스템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법관 인사 방식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법조계 안팎에서 꾸준히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현직 판사가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더욱이 문 부장은 “잘못된 법관인사가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강한 논리로 대법원을 압박했다.

93년 방희선(方熙宣·현재 변호사) 판사가 대법원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낸 적은 있지만 이는 방 판사 개인의 인사상 불이익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당시 방 판사의 헌법소원은 각하됐다.

사법부의 법관 인사시스템은 검찰과는 달리 아주 단순하다.

법관은 신규임용 때부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토대로 ‘서열’이 정해진다.

동기생이 100명이면 1등부터 100등까지 성적에 따라 정확하게 가려지며 이 서열을 토대로 15∼20년 동안 근무지와 보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어진다.

법관으로서 결정적으로 승부가 갈리는 것은 차관급인 고등부장 승진 때다. 고등부장은 한 기수에서 보통 10∼15명이 승진하며 경쟁률은 3 대 1 정도.

고등부장 승진에서는 15∼20년 동안 이어진 법원장 등 상급자의 인사고과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판사들은 ‘희망’을 잃고 대부분 변호사로 개업한다.

문 부장이 문제삼은 것은 이 부분이다. 법원 상층부의 자의적인 평가로 고등부장 승진자가 걸러지기 때문에 판사들이 인사권자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위의 눈치를 살피는 ‘눈치 판결’이 반복되고 결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 부장은 “인사제도의 관료화가 심해져 상하관계를 봉건적 군신관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용호(李容湖) 게이트’ 사건의 특별검사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승진이나 보직에 신경쓰지 않는 특별검사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 부장은 사건처리율 등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법관을 평가하고 그에 대한 당사자의 반박을 허용하는 방식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문 부장의 문제 제기에 대해 상당수의 법관들은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 방식이 너무 급격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므로 상급자 등에 의해 꾸준히 자질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판사들의 분발을 촉진하는 경쟁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은 문 부장의 주장에 대해 “인사제도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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