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외국인이 본 '차별'

  • 입력 2002년 4월 10일 17시 18분


세계 각국의 교류가 급증함에 따라 지구촌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식, 미국식, 프랑스식이 따로 없을 정도다.

1997년 아시아 경제의 붕괴와 뒤이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아시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일어선 역동적인 나라가 됐다. 언론은 연일 투명한 회계기준, 고객과 주주 위주의 경영 등을 주제로 한 경제뉴스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표면상의 변화일 뿐이고 여전히 공정하고 신속한 무역, 진실한 고객서비스 및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있다.

호주인인 나는 호주산 식품을 수입해 공급하고 있다. 나는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싼값에, 24시간 안에 배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99년부터 한국에 살면서 이런 노력이 일부 한국 기업들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은 물건의 질이나 가격은 따지지 않고 먼저 돈(리베이트)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어떤 곳은 노골적으로 룸살롱에 갈 것을 요구했다.

규모가 작은 내 회사는 이들에게 건네줄 돈이 없다. 아니, 규모에 상관없이 돈을 주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게다가 여자인 내가(굳이 여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 룸살롱에 갈 수 있겠는가.

며칠 뒤 그들은 똑같은 제품을 내가 제시한 것보다 높은 값에, 불리한 배달조건에 다른 회사로부터 구입했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따지기도하고, 여기저기 하소연도 해봤지만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맞벌이가 보편화됐는데도 한국의 남자들은 여전히 “직장일 때문에 피곤해서…”라며 드러눕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뇌물을 줄 뜻이 없다고, 룸살롱에 갈 수 없다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며 불이익을 주는 것은 결국 그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최근 나는 서구에서 인기있는 한 상품을 한국시장에 선보였다. 포장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고, 상품의 질은 아주 좋았다.

1주일간의 홍보기간 내내 행사장에서 얼마나 팔리는지 지켜봤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을 이 상품의 영구적인 시장으로 삼을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연 누가 잃는 것일까. 그릇된 차별관행 때문에 최상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한국인들이다.

아드리아나 자케이 아시아커넥트 사장

정리〓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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