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1급 시각장애인으로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7급 계약직에 채용돼 화제를 모았던 신창현(申昌鉉·44) 박사가 15일로 공무원 생활 한 달 보름째를 맞는다.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에서 특수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7년 귀국해 단국대 강남대 등에 출강하다 통근 전철 안에서 우연히 현 서울시 문영모(文永模) 장애인복지과장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장애인의 어려움은 장애인이 가장 잘 안다’는 취지에서 취해진 파격 인사였다.
그는 14일 “그동안 공무원 조직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준비하는 데 의외로 긴 시간이 걸렸다”며 “아직은 준비운동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별히 챙겨주는 직장 동료들과 시각장애인용 특수컴퓨터, 점자프린터 등의 도움을 받아 공무원 일에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가 공무원으로서 낸 아이디어 중 하나는 지하철 환승역 등에 적외선 방식을 이용한 시각장애인 유도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는 방향 감각을 잃은 장애인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왼쪽은 ○○ 방향, 직진하면 △△ 방향’ 하는 식으로 음성을 통해 길을 안내해주는 장치.
그는 이미 관련 국내 업체와 제작 협의를 하고 있다.
매일 집(경기 안양시)에서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서울의 장애인 보행환경 중 횡단보도와 음성신호기, 유도 블록 등 시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장애인 입장에서 설계되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서울은 뉴욕과 비교해보아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 시설 그 자체는 개선되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누군가가 ‘같이 가자’며 손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왜 그리 바쁘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지 모르겠어요.”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며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특히 부러웠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도 장애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고용해 능력을 인정하면 무한정 투자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의사 변호사 핵물리학자 등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다양합니다.”
그는 이어 공무원이 됐으니 대안 없는 비판도 할 수 없게 돼 어깨가 무겁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밖에 “컴퓨터용 시각장애인 음성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업체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만 받아내면 끝이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며 “조금만 신경을 써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수출하면 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1급 시각장애인으로 공직 진출 1호인 그는 “내가 잘 해야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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