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첫 주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은 이군은 수업에 늦을 뻔했다. 1㎞ 넘게 떨어진 공학관으로 가는 만원버스에 미처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타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 4대나 놓친 뒤에야 할 수없이 택시를 타고 갔다.
또 화학실험시간에는 실험기구를 통해 관찰한 내용을 공책에 적어야 하지만 손이 떨려 실험기구조차 들 수 없어 애를 먹었다.
서울대가 올해 처음 장애인특별전형을 실시해 모두 7명의 신입생을 뽑았지만 이들을 위한 준비를 갖추지 않아 장애인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대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줘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고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 위해 장애인특별전형을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장애인 학생을 선발한 뒤 이들을 위한 시설 마련 등은 외면하고 있다.
이군은 “자연과학대학 강의실로 가기 위해 이용하는 중앙도서관 옆 계단은 폭이 좁고 가파른 데다 난간까지 없어 내려올 때는 거의 바닥에 붙어 기다시피 해야한다”며 “사물함조차 마련되지 않아 무거운 짐을 늘 갖고 다녀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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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영대 박윤정씨(21·여·청각장애 2급)는 수업내용을 잘 들을 수가 없어 당초 신청했던 6개 과목 중 영어회화 등 2개 과목을 취소했다.
법과대 한모씨(30·지체장애 2급)는 “장애인학생을 선발만 하고 이에 따른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시설도 문제지만 장애인학생들을 보다 힘들게 하는 건 학교 측의 ‘무신경’. 학교 측은 입학 후 지금까지 이들에게 학교생활의 불편함을 물어온 적이 없고 또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줄 상담창구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이군은 “학교를 찾아가 힘든 상황을 얘기했지만 학교 측은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시설개선비로 예산 1억원이 배정돼 있고 원할 경우 도우미를 요청할 수 있지만 장애인학생들을 위한 제도는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서울대는 앞으로도 계속 특수교육자 특별전형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18일 발족한 ‘서울대 장애인 동문회’ 최민(崔民) 준비위원장은 “대학본부, 동문, 학생들로 구성된 장애인협의회를 만들 것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