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아시나요]송암기념관/시각장애인 사랑 점자처럼…

  • 입력 2002년 4월 19일 21시 08분


인천시 시각장애인복지관(남구 학익동 709의 1) 1층에는 44평 남짓한, 작지만 뜻깊은 기념관이 있다.

국내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박두성(朴斗星·1888∼1963·강화 출생) 선생을 기리는 ‘송암(松岩)기념관’이 그 것.

1999년 9월 문을 연 이 기념관에는 선생이 평소 사용하던 점역판을 비롯해 90여점에 달하는 각종 사진자료와 문서가 보관돼 있다.

송암선생은 일제시대인 1912년 설립된 제생원(濟生院·장애인특수교육기관) 교사와 인천 영화학교 교장(1936) 등을 지낸 대표적 교육자.

특히 현재 쓰이고 있는 ‘6점자 한글’을 만들어 보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인천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위치▼

1926년에 제정돼 ‘훈맹정음’(訓盲正音)으로 불리는 ‘6점자 한글’은 한글의 초·중·종성을 각각 6개의 점으로 풀어 표현해 시각장애인이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한 것.

선생은 3·1운동 이후 극심해진 일제의 감시를 피해 1920년 ‘조선어점자연구회’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훈맹정음을 완성했다.

선생은 당시 우리 말과 글을 없애 민족혼을 말살하려던 일제에 맞서 “앞을 못보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의 불구를 만드는 것”이라며 점자 보급에 열성을 다했다.

성경 전서 등 200권이 넘는 서적을 직접 점역하느라 1932년에는 자신이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1963년 76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점자책은 반드시 세워서 보관해야 한다. 눕혀두면 점자가 파손되니…”라고 말할 정도로 선생의 점자 사랑은 지극했다.

▼점역판 점자책등 90여점 전시▼

선생은 부인과 함께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침술과 안마기술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인천시각장애인협회 간상복 회장은 “송암기념관은 전국 22만여 시각장애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기념관을 포함해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을 만드는데 든 33억원은 인천시와 지역 150여 단체와 개인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최근에는 선생의 딸인 박정희씨(80)가 틈틈이 그린 그림을 모아 연 개인전 수익금 가운데 1000만원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기탁하기도 했다.

문을 연 지 3년이 채 안됐지만 기념관에는 각급 학교와 단체의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19일 오전 동료들과 기념관을 찾은 허희씨(52·여·사회복지사)는 “송암 선생 영정은 물론 점자 자료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기념관 홍보팀 추민경씨(26·여)는 “어린 학생들도 이곳에 들어서면 선생의 발자취에 저절로 숙연해지곤 한다”고 말했다.

송암 선생은 최근 문화관광부로부터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기념관측은 이를 계기로 18일 1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송암 선생 생가 순례’ 행사를 가진데 이어 25일 오전 10시에는 대규모 기념 강연회도 열 계획이다.

기념관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이며 관람료는 없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 032-876-3500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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