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신뢰로 가득하고 협동이 넘치며 도덕이 풍성하게 작용할 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런 사회적 자본을 연료로 하여 돌아가는 기계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남과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동일한 민주정치와 지방자치제도 아래에서 운영되어 왔는데도 경제와 사회 문화적 발전 수준은 현격히 다르다.
북부지역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반면, 남부지역은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낙후된 사회로 남아 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로버트 푸트남 교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축적된 사회적 자본의 격차로 설명한다. 북부의 문화 속에는 신뢰와 협동을 중시하는 시민정신이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남부에는 지시와 명령, 복종, 불신만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푸트남 교수는 결국 신뢰와 협동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경쟁에서 누가 이기는가 하는 것이 곧 21세기 국가 경쟁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런 국가 간의 경쟁에서 얼마나 앞서고 있는가. 교육부는 BK21, 즉 ‘두뇌한국21’이라는 대학교육지원 정책에 큰 힘을 쏟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 자본의 축적과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선순위가 크게 뒤지는 사업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축적은 무엇보다 유아교육과 연결되어 구상되었어야 했다.
양어장에서 큰 잉어를 기르려면 치어 때부터 잘 먹여야 한다. 다 자란 잉어에게 갑작스레 먹이를 많이 주었다고 쑥쑥 자라는 게 아니다.
대학에 많은 돈을 투자해 교수와 학생들을 창의적이게 만들고 연구업적을 신장시켜 경쟁력이 생기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유아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국가의 경쟁력을 대학에서가 아니라 유치원과 유아교육에서 찾는 지혜를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뭔가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돈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3세부터의 유아교육 지원을 법제화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들이 취임사나 연두회견에서 유아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를 거듭 천명하는 것이 여성 표를 의식한 인기발언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국가 교육재정이 빈약하기로도 서로 비슷한 영국과 프랑스가 왜 유아교육에 재정투자의 최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이 나라들은 각자 21세기의 가장 경쟁력있는 나라를 꿈꾸면서 푸트남 교수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축적의 원대한 기대와 꿈을 유아교육에 걸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선진국들이 3세를 공교육의 시작점으로 굳혀가고 있으며 이 때부터 시민교육을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아이들 속에 내재된 신뢰 협동 도덕 준법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케 하며, 창의성과 천재성의 뿌리를 찾아주고 북돋아주려는 것이다.
유아기부터 질 좋은 교육을 실시해야 우리의 미래를 끌고 갈 인력을 제대로 길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행순 한국글렌도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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