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보고하자 홍걸씨 생사람 잡는다 화내"

  • 입력 2002년 5월 3일 07시 01분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자신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와 구속된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씨의 비리를 청와대에 보고한 경위와 그 이후의 청와대 반응 등을 상세하게 밝혔다.

따라서 왜 그 이후 홍걸씨에 대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당시 청와대와 검찰 경찰 등은 어떻게 직무를 유기하고 직권을 남용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이 철저히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 경위와 내용〓김 전 차장은 2년 전에 이미 최씨의 문제점을 종합해 청와대에 보고했으며 당시 김 대통령은 국정원이 책임지고 최씨를 조치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홍걸씨와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던 권노갑(權魯甲)씨는 “김 차장이 허위 정보를 만들어 유능한 사람을 죽이려 한다”며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과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김 전 차장은 밝혔다. 그는 자신이 권씨와 홍걸씨를 개별적으로 만나 담판까지 지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권씨와의 담판은 2000년 7월 권씨 집에서의 만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시 불이행과 직권 남용〓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홍걸씨와 권씨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셈이 된다. 당시 국정원이 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김 전 차장이 “홍걸씨와 최씨가 민정비서실과 검찰을 시켜 나의 뒷조사까지 했다”고 주장한 부분은 특히 민감하다. 사실이라면 청와대와 검찰은 일을 거꾸로 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김 전 차장이 정현준(鄭炫埈) 게이트와 관련해 1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것을 둘러댔을 가능성도 있다.

또 민정비서실의 경우도 비서실이 아니라 그 지휘를 받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나선 것일 수도 있다. 최규선씨의 비서였던 천호영(千浩榮)씨는 최씨가 최성규(崔成奎)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에게 김 전 차장의 보고 문제를 얘기하며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폭로했었다. 따라서 최 전 과장이 뒷조사에 직접 관여했고 이 때문에 그가 해외로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