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녹음테이프 쟁점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38분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씨가 4월14일 검찰출두 전에 남긴 육성 녹음테이프는 그동안 제기돼 온 각종 의혹을 뒷받침하는 듯한 내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와 최씨의 녹음테이프에 거명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최씨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최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청와대 밀항 종용했나〓최규선씨가 밀항대책회의 참석자라고 지목한 이만영(李萬永) 대통령정무비서관은 최씨의 주장에 대해 “지금 50년대냐. 자기 구명운동에 발악하는 사람을 어디로 보내라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이어 “그런 ×××같은 사람이 내 이름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비서관은 이미 검찰조사(4월 19일) 결과 ‘혐의점 없음’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해당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즉각 소송을 내는 등 법적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씨의 주장에는 밀항 대책회의와 관련해 구체적인 정황이 제시돼 있어 청와대나 이 비서관의 일방적인 부인을 수용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사실여부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최성규(崔成奎)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도 의문투성이의 해외도피를 해버려 궁극적으로는 최 전 과장이 소환돼야 진상이 밝혀질 전망이다.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 홍걸씨에게 갔나〓홍걸씨에게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최씨의 전화를 직접 받은 김현섭(金賢燮) 민정비서관은 “최씨로부터 수표 전달 운운하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홍걸씨에게 물어보니 ‘그런 적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비서관은 또 “최씨가 ‘청와대에서 검찰 소환을 연기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검찰소환은 청와대가 간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고 분명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모두 청와대를 통한 간접 해명일 뿐, 홍걸씨의 직접 해명은 아직 없다. 더욱이 홍걸씨가 각종 이권청탁 현장에 최씨와 동석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만큼 청와대 주변에서조차 “홍걸씨가 검찰에 출두해 진술을 하기 전에는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최규선씨 구명에 개입했나〓98년 마이클 잭슨 공연 불발 직후 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과 이강래(李康來)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현 민주당 의원)이 최씨를 구속수사토록 지시했다는 최씨의 주장에 대해 이강래 의원은 “최씨가 나한테 억하심정을 가진 모양이다. 내가 치안비서관을 데리고 있었는데 경찰에 직접 전화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부인했다. 이종찬 전 원장 측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씨의 구속을 저지한 당사자로 거명된 당시 박주선(朴柱宣) 대통령법무비서관(현 민주당 의원) 측도 “최씨는 알지도 못하고 일면식도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최씨가 이들 관계자와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면식을 갖고 있었고, 최씨의 구속영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각된 점 등으로 볼 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대우 현대에 외자유치 특혜 지원했나〓‘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대우와 현대를 투자대상으로 찍어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청와대 측은 “망상증 환자의 소리”라고 일축했다.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은 “그런 일방적 주장에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최씨는 대통령과 그런 얘기를 나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씨가 97년 12월 알 왈리드 왕자를 초청해 김 대통령을 만나게 한 당사자인 것이 사실이고 △김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찍을 정도의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대통령이 최씨에게 직접 투자문제를 얘기했을 개연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최씨의 주장에 큰 신빙성을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대우와 현대의 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각종 지원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정황상 가능한 얘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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