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용도를 변경해 주겠다거나 건축물 고도 제한을 해제해 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건축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만난 브로커들은 주로 막대한 개발 이득을 노리는 부동산 개발업자나 건축업자들을 상대로 이 같은 ‘거래’를 벌였으며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대의 돈을 요구했다.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Y호텔 커피숍. 약속 장소에 나타난 50대 남자 2명은 인사가 끝나자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취재팀이 부동산 개발회사 이사 J씨와 동행한 이 자리는 서울 강동구 동서울상고 옆 일반 상업지구 1만1000여평의 매입을 협상하기 위한 것.
이 땅은 인근에 10여개의 아파트 단지가 있고 지하철역에 인접해 있어 건설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20%로 고정돼 있는 상가면적이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상가면적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인 셈.
전직 건설교통부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브로커 L씨는 관련 서류를 꺼내 보이면서 “일단 선수금 300억원만 내면 상가 면적을 줄여주겠다”며 “작전이 다 짜져 있으니 서울시의 건축심의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약 1시간 동안의 만남은 대부분 이 부지의 전망과 현재 상태, 상가면적 문제 외에 땅 소유주들에 대한 대금 지급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대화 도중 간간이 “해결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들은 “심의와 허가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약’을 쳐놨다”며 “지방선거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만 말했다.
J이사는 미팅이 끝난 뒤 “브로커들은 팩스로 구매 의향을 물은 뒤 100억원의 잔고가 들어있는 통장 사본을 보내야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다”고 말했다.
그는 “11일에도 고도제한에 묶여 있는 서울 강북구 드림랜드 뒷산 2만여평을 풀어줄 테니 5 대 5로 동업하자는 브로커의 연락이 있었다”고 말했다.
건축 브로커들이 약속장소로 주로 이용하는 이 호텔 커피숍은 이날 오후 토지 구매건으로 만나는 개발업자와 브로커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취재팀 뒷자리에 앉은 한 브로커는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야구장 부지에 대한 논의로 열을 올렸다.
이 브로커는 “학교 부지로 묶여 있는 야구장 부지를 매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200억원을 넣어주면 시교육청에 ‘약’을 쳐 용도를 변경시켜 주겠다”고 상대방에게 제의했다.
인천 부평구 부개동 한전 부지를 불하받게 해주겠다며 협상 중인 또 다른 브로커는 대화 도중 상대방에게 “대가를 돈으로 받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며 “지분을 땅으로 나눠달라”고 속삭였다.
경찰 관계자는 건축 브로커들은 통상 해당 지역이나 인허가 관청의 전현직 고위 간부를 끼고 활동 중이며 브로커 중에는 조직 폭력배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부동산 개발업자 등으로부터 선수금을 받아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수법 등으로 일을 처리한 뒤 잔금을 받는 식으로 일하고 있다”며 “사기인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줄을 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