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불안하다]<1>병 고치러 갔다 병 걸린다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42분


《병원에서 환자들이 세균에 감염돼 숨지고 있다. 응급실에서는 병실 비기를 기다리던 환자가 숨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위급한 환자들이 중환자실 여유가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도 병원들은 적정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아 시설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의사들 역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전공에만 몰린다. 위기에 처한 의료시스템의 실태를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북 전주시의 한 병원에서 지난해 5월 태어난 신생아가 복부가 차오르고 숨을 못 쉬는 고통 속에서 숨지자 부모는 병원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아기는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 수술은 잘 받았는데 곧이어 MRSA 감염으로 숨진 50대 남성, 인공 무릎관절 수술을 받은 뒤 세균에 감염돼 다리를 자른 20대 여성, 척추 디스크 수술을 받고 감염돼 하반신이 마비된 50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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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돈교수 "포괄수가제 확대 필요"

병원에서 매일 수많은 환자들이 병균에 감염돼 그중 적지 않은 숫자가 숨지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도 병원도 ‘쉬쉬’하는 속에서 ‘병원 감염’이라는 병은 곪아서 터지기 직전에 이른 것이다.

본보가 16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들이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하자 해당 병원이 혹시 자기 병원은 아닌지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만큼 병원 감염은 흔하고 모든 병원이 쉬쉬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증거이다.

한국에는 몇 명이 병원 감염으로 숨지는지 기초자료조차도 없다.

미국의 경우 매년 종합병원 입원환자 3500만명 중 5∼10%가 병원 감염을 일으키고 이 중 6만여명이 숨진다는 통계가 있다. 감염 전문가들은 국내 입원 환자 400여만명 중 최소 1만명이 각종 병원 감염으로 숨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강문원(姜文元) 회장은 “병원 감염의 3분의 2는 환자가 면역력이 떨어져 원래 있던 세균이 활동하는 것이고 3분의 1은 병원에서 감염되는 것”이라면서 “국가와 의료계가 합심하면 외부 감염으로 희생되는 환자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도 의료계도 병원 감염에 대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가 하루 100∼200명을 봐야 수익을 얻는 상황에서 환자를 볼 때마다 손을 씻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마스크와 장갑을 끼는 것마저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병원 중에는 진단 및 수술기구의 소독조차 정해진 소독시간을 채우지 않고 정기 검사를 안 하는 곳도 숱하다.

병원 감염 확산의 밑바닥에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서울대병원 내과 오명돈(吳明燉) 교수는 “현재 국내 병원은 의료 소송만 없다면 병원 감염이 많을수록 수익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병원에서 병원균에 감염되면 이전 치료비는 물론 새로 감염된 병원균에 대한 치료비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

반면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를 격리 치료할 경우 치료비를 삭감당하기 일쑤다. 감염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일회용품도 상당 부분 보험 인정이 안 된다. 매년 의사들이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하다 수 십 명씩 바늘에 찔리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주사제의 보험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의료전문 신현호(申鉉昊) 변호사는 “국가와 병원들은 감염 방지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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