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센터에서 700m 떨어진 문래공원까지의 골목길은 이들을 상대로 한 잡상인과 여행사 직원들로 붐볐고 일부 외국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카드놀이를 하거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약 3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불법 체류자 중 이날 오전까지 21만여명이 신고를 마친 상태.
법무부가 3월12일 공표한 불법 체류자 자진신고제는 25일까지 소정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내년 3월31일 이전에 출국하는 항공권이나 배표를 구입해 신고하는 모든 불법 체류자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합법적으로 체류케 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날 취재팀이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계속 한국에 남아 있겠다”고 밝혀 자진 출국을 전제로 한 신고 접수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13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는 중국동포 박모씨(38)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직장도 안정적이라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에 아들을 한국 내 화교학교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문제도 있어 애들이 다 크기 전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2년째 체류 중인 중국동포 임모씨(36)는 “아직 올 때 쓴 1000여만원의 돈을 다 벌지도 못했는데 내년 3월 말까지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들 대부분이 내년 3월 말 이후에도 한국에 계속 남을 것이라는 것은 배표 판매 실태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배표를 팔고 있는 한 회사 관계자는 “내년 3월 같은 날 출항하는 배들의 경우 정원의 4배 이상까지 표를 팔고 있다”며 “어차피 실제로 배를 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10만원에 불과한 배표가 일종의 ‘1년간 보험료’로 이용되고 있다”며 “배표를 산 사람들의 70∼80%는 안 갈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내외 항공사들에 따르면 상당수 불법 체류자들은 출국 항공권을 사 신고한 뒤 바로 환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은 환불수수료를 대폭 올리거나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아예 항공권을 팔지 않기도 한다.
아프리카와 러시아 등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은 유예기간 경과 후의 일을 의논하느라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나이지리아에서 왔다는 E씨(22)는 “온 지 1년밖에 안 돼 그냥 갈 수는 없다”며 “하지만 외모상으로 금방 표시가 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어떻게 이뤄지느냐”며 “처벌이 지금과 달라지는 게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신고자들 대부분이 유예기간 후에도 국내에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로서는 현재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대대적인 단속이나 강화된 처벌규정 등 구체적인 사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며 “1년 후에도 단속을 피해 사라져버리면 지금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기자sys1201@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