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자신이 직접 해보니 어떻더라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김씨는 이들이 병원, 학원 등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브로커’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브로커가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보험사기나 장기밀매 등과 같은 범죄 행위는 물론이고 경매나 사채 알선, 약국이나 미국 병원, 사설학원 알선 등에까지 브로커가 등장하고 있다.
결혼 6년째인 회사원 박모씨(3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올해 초 괌 원정 출산을 싼값에 주선해주는 브로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미국에서 출산할 때는 1억원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미국령 괌에서는 2000만∼3000만원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기 때문.
박씨는 “미국에서 출산하면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이용해 브로커들이 일부 여행사들과 연계해 알선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브로커들은 전체 비용의 5∼10%를 수수료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사소한 법규 위반 처리에도 브로커가 개입한다.
택시기사 홍모씨(43)는 최근 승차 거부를 이유로 고발당해 서울의 관할 구청에 갔다. 이때 30대 남성이 “소명서를 잘 써주는 곳을 아는데 5만원만 내라”며 접근했다.
비싼 벌금을 무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따라간 곳은 구청 인근의 한 대서소. 대서소에서는 ‘당시 큰아버지 제사가 급해서 도저히 승객을 태울 수 없었다’는 내용의 그럴듯한 소명서를 써줬고, 홍씨는 벌금을 물지 않았다.
서울 강남경찰서 강일구(姜一球) 수사2계장은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된 뒤에는 병원에서 대형 약국을 알선하는 브로커가 생겨나는 등 돈이 되는 곳에는 반드시 브로커가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권에 개입해 실속만 차리는 브로커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고차 매매시 차량등록 업무를 대행해주거나 부동산 매매, 파출부나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일거리 알선 등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케 해주는 브로커도 다수 있다.
전문가들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브로커가 이처럼 많이 생겨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투명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황승흠(黃承欽)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브로커는 정보가 어느 일방에게만 불균형적으로 몰릴 때 생겨난다”며 “브로커들을 사라지게 하려면 각종 절차와 과정 등 행정을 간편하게 개선하고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하는 등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인섭(崔仁燮)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브로커는 좋은 말로 ‘로비스트’인데 우리는 이 제도가 공식화되지 않고 은밀하게 행해지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며 “각종 제도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용해 브로커들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