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보통 노인들의 진솔한 삶 교훈으로”

  • 입력 2002년 5월 29일 01시 29분


“나무에 그려진 아이들 중에서 현재의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한 아이에게 동그라미 하세요.”

27일 오전 11시 경기 부천시 상동사회복지관(원미구 상동 318의 1·032-652-0420) 2층 강의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책상에 모여 앉아 시험문제라도 풀 듯 한참이나 공책만한 그림을 들여다 보며 고심하고 있다.

이 종이에 그려진 아이들은 모두 10명.

높다란 가지에 걸터앉은 아이, 밑동부터 열심히 기어 오르는 아이, 나무에서 떨어져 우는 아이, 사다리 끝을 잡고 있는 아이 등 위치와 자세가 제각각이다.

“저는 이 아이처럼 옆 사람이 먼저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잡아줄 겁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림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더러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러는박수를 보냈다. 일견 유치한 듯 보이지만 그림 속 아이를 통해 노인들은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이 날 모임은 상동사회복지관이 올해 처음 시도하는 ‘어르신 자서전 편찬사업’의 일환인 집단활동 프로그램.

40년간 택시운전을 하다 퇴직한 할아버지와 6·25 이후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할머니 등 부천지역의 62∼77세 ‘평범한’ 노인 6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매주 한 차례 정도 열리고 있는 집단활동은 본격적인 집필을 앞두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자서전을 쓰나’하는 서먹함과 쑥쓰러움을 덜기 위한 자리.

그동안 ‘별칭짓기’ ‘나의 성격’ ‘환상의 타임머신’ 등을 주제로 어린시절과 성장과정 등을 쉽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참가자 가운데 ‘활’ 부문 중요무형문화재인 김박영(金博榮·73·소사구 소사본동) 옹만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자서전을 쓰고 있는 이들은 평범한 노인들이지만 남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자신의 일과 삶을 지극히 사랑해 왔다는 것.

박종원(75·원미구 중동) 할아버지는 “지난 이야기를 할 때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며 “특별한 삶은 아니지만 늘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자서전 원고는 지역 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30∼40대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노인들을 1대1로 만나 대필할 예정. 교정과 사진촬영도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덕분에 80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복지관측은 설명.

이들의 자서전은 1인당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씩 모두 600장 분량으로 한 권의 책(200쪽)으로 묶여 10월 중순 출간된다.

복지관측은 1000권 정도를 발간해 일부는 도서관에 비치하고 개인적으로 원하는 사람에게는 일정 금액을 받고 판매할 계획이다.

박영선 사회복지사는 “자서전은 노인들에게는 자긍심을 갖게 해 주고 젊은 세대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며 “개인이나 단체의 후원을 통해 내년에는 더 많은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편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희망자는 동사무소같은 행정기관이나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신청한 뒤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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