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는 온통 축구열풍…세계각국 훈련캠프 잇달아

  • 입력 2002년 5월 29일 18시 43분


인구 8만5000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제주의 관광도시 서귀포가 ‘축구의 메카’로 떠올랐다.

천혜의 자연조건에 특급 호텔들을 갖춰 2002 한일월드컵 기간에 각국 선수단이 앞다퉈 훈련캠프를 차린 덕에 서귀포는 온통 축구열풍에 휩싸여 있다.

이미 한국과 미국, 잉글랜드 대표팀이 이 곳을 다녀간 것을 비롯해 지금은 중국과 슬로베니아 팀이 막바지 담금질을 하고 있는 중. E조 1위가 유력한 독일도 다음달 12일부터 28일까지 숙소와 연습구장을 예약해 놓았다.

서귀포에는 공식경기가 열리는 월드컵경기장 외에 강정동의 강창학 구장, 토평동 동부 구장, 대포동 중문 구장 등 3개의 훈련장이 있다. 중국은 중문, 슬로베니아는 동부 구장을 이용하고 있고 독일은 강창학 구장을 쓸 예정이다.

모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새로 짓거나 단장한 것들. 이 가운데 강창학 구장과 동부 구장은 ‘시민들의 힘’으로 건설돼 월드컵을 바라보는 서귀포 시민들의 눈길은 남다르다.

강창학 구장은 제주에서 감귤농사와 고구마 전분사업으로 큰 돈을 번 강창학(康昌鶴·75) 옹이 1988년 기증한 약 8만평의 부지에 지은 연습장.

사철 잔디가 깔린 축구장 2면에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전천후 구장. 주변에는 트랙이 깔려있고, 월드컵이 끝나면 월드컵경기장 가변 스탠드 8000석을 여기로 옮겨 웬만한 체육대회도 치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서귀포시는 당시 시가로 50억원에 상당하는 땅을 흔쾌히 내놓은 강 옹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구장명을 지었다. 덕분에 강 옹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축구팬이 없을 정도로 전국적인 명사가 됐다.

강 옹은 이밖에 양로원을 지어 천주교 재단에 헌납하는 등 남 모르는 선행도 많이 베푼 인물. 그러나 인터뷰 요청에는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아”라며 끝내 사양했다.

동부 구장은 서귀포 시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은 성금으로 지은 연습장이다. ‘이름 남기기(name-trace) 운동’을 벌인 결과 767명의 시민과 단체가 총 13억600만원을 마련, 땅을 사고 건설비용까지 충당했다.

서귀포시는 법환동 월드컵경기장 입구에 성금을 낸 시민들의 이름을 명판에 새긴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이처럼 남다른 축구사랑 때문일까. 생면부지의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구장에는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는 촌로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중문구장 바깥 철망에 바짝 붙어 중국팀이 두 편으로 나뉘어 미니게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무리의 노인들은 “꼭 우리 손주들 노는 것 같아…”라며 흐뭇해 했다.

서귀포〓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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