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어린 학생이 공부에 찌들어서 극한적인 학창생활을 보내도록 한다면 인격 양성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반면에 독일처럼 직업적 학문을 위한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죽도록 시키는 것 또한 보편적인 인적자원 양성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그러나 미국에서는 코넬대의 학생이 매년 수명씩 과도한 공부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자살을 감행하는 예처럼 대학생이 죽도록 공부한다. 대학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적자원을 배출하는 관문이기 때문에 대학생활은 평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공교육의 붕괴를 가져온 점이다. 이는 곧바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수반하기 때문에 계층간 위화감을 가져오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창의력 배양을 억제시킨다.
많은 학부모가 과도한 사교육비를 들여야 하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교육이민을 감행하고 있다. 더구나 방과 후에 사교육기관으로 달려가야 하는 학생들은 다양한 교양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교육기관에 어린 학생들을 내몰게 하는 뿌리를 추적해보면 대학격차와 대학의 입시제도에 기인한다.
먼저 대학의 격차문제에서 보면 한국은 소위 일류대학이 몇개로 한정되어 있고 그 대학의 합격증은 인생의 보증수표와 다름없는 대학간판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미국에서는 MIT 공대가 있으며 시카고대의 경제학, 예일대의 법학이 유명하며 독일의 경우 하이델베르크대의 철학, 빌레펠트대의 사회학 등 선진국에서는 대학마다 적어도 한 개 분야는 강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연상되는 것처럼 서울대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이 소수 몇개 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우수대학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입시경쟁을 수반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대학간에 우열이 크지 않고 대학마다 특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이와 같은 한국교육제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현존하는 대학 모두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최우수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 예컨대 수산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제주대학으로 간다, 백제문화를 연구하는 대학은 원광대다라는 등식이 성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대학입시는 수월하게, 졸업하는 것은 어렵게 해야 한다. 대학에서 일부 실시하고 있는 조기졸업제도와 복수전공인정제는 확실하게 실시되어야 한다. 예컨대 복수전공제에 있어도 아예 부전공도 전공학과와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현행 학사학위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셋째, 교수는 지식의 생산자, 학생은 고객이라는 관계로의 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에서 생산품이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객장에서 사라지듯이 교수사회의 획기적인 경쟁분위기가 진작되어야 한다. 대학의 질은 교수와 면학분위기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사회에서도 연구실적에 따른 파격적인 연봉제 도입과 과감한 재임용제도가 영미식과 같이 구축되어야 한다.
넷째, 현재 일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기여입학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부의 대물림이 학교 교육제도에서까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계층의 위화감을 유발하게 됨은 물론 대학생들 사이에도 새로운 ‘왕따족’이 생겨나서 학생 사이에서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만약에 대학재정이 문제가 된다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스텐퍼드대와의 관계에서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스텐퍼드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은 실리콘밸리에서 충당되는 산학협동체제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운영 책임자들은 하버드대가 제2의 실리콘밸리를 추진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대학 간판주의 사라져야▼
끝으로 대학 간판을 가지고 출세한다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이른바 연줄망 사회의 고질적인 세 가지 병폐 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그래도 학연철폐일 것이다. 21세기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교인맥에 따른 분파주의와 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소위 일류병이 사라져야 한다. 대학생이 인생에서 가장 죽도록 공부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는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선한승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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