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 세계의 놀라움 속에 당당히 4강까지 오르는 과정에는 온 국민의 열화 같은 응원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온 국민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표출되는 거리응원을 뒤꼍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사람들 역시 이번 월드컵의 숨은 공로자들인 셈이다.
▽시민월드컵의 숨은 공로자들〓경찰과 관련 공무원들, 환경미화원, 지하철 관련자 등 ‘시민월드컵’을 뒷바라지하는 이들 직종 종사자들은 월드컵 개막 이후 부쩍 늘어난 업무에 파김치가 되면서도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응원인파 정리와 경비업무를 전담한 경찰의 경우 월드컵 개막전부터 휴일을 잊고 지내왔다.
경찰은 4일 폴란드전 때 전국 거리응원 장소 주변에 1만여명이 배치됐으나 그 뒤 거리응원 인파가 점차 늘어나면서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경찰관의 배치도 비례해서 증가하고 있다. 거리응원 장소에 배치되는 경찰관은 10일 미국전을 기점으로 급증해 22일 스페인과의 8강전 때에는 234개 중대 2만8000여명까지 늘었고 비상대기 인력도 큰 폭으로 늘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간부는 “월드컵 개막 이후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고 한국전 전날과 당일은 현장에 나간 경찰 모두가 응원인파 통제에 거의 녹초가 된다”며 “솔직히 서울에서 경기가 열리는 25일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힘들고 지치지만 연일 계속된 한국팀의 선전과 지금까지 큰 사건 사고 없이 거리응원이 진행됐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전 때마다 전국에서 필수요원을 제외하고 행정요원들까지 총동원된 119 구조대도 마찬가지.
특히 22일 스페인전 때는 30도에 육박하는 한낮 더위 속에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일사병과 탈진 등으로 쓰러지자 119 구급대원들은 하루종일 응급환자를 돌보고 병원으로 후송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응원 인파가 사라진 뒤 남은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도 이번 월드컵을 위해 헌신하는 숨은 일꾼 가운데 하나. 시청 앞 광장과 을지로 무교동 등 관할구역의 청소를 책임지는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 허승일 주임은 “응원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겨진 쓰레기가 많아 소속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며 “그래도 우리가 이기니 힘든 줄 모르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응원 장소 주변 건물관계자나 거주자들도 소리 없이 ‘시민월드컵’을 빛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교통통제와 인파, 소음을 불평 없이 감내하고 있기 때문.
세종로 네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응원전이 열리는 날은 아침부터 응원 소음으로 아예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며 퇴근 후에도 인파 때문에 제때 퇴근을 못하고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도 한국이 이기니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 응원객들이 보행자 통로는 확보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거리응원과 거리가 먼 업종에 종사하는 인근 가게들의 ‘출혈’도 만만치 않다. 거리응원전이 열릴 때마다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한다는 무교동의 유명 추어탕집 주인은 “6월 한달 매상이 말이 아니다”며 “그래도 우리 팀이 이기길 빈다”고 말했다.
▽무료검진 바람〓우리 팀을 응원하느라 목이 쉰 붉은 악마들을 위해 최근 순천향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이 무료검진을 해주기로 한 데 이어 일반 개인병원에서도 무료진료 붐이 일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연세이비인후과의 김태형(金太亨) 원장은 “목이 쉬어 병원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3배는 늘었다”며 “4강 진출로 인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 이번 주부터 무료진료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주부터 무료진료를 하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민원식이비인후과의 민원식(閔元植) 원장은 “월드컵기간 중 응원을 하다 쉰 목을 그대로 두어 물혹이나 굳은살이 생긴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무료진단을 받아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비인후과 개원의협의회 심상열(沈相悅) 회장은 “개원의 마다 목이 쉰 환자들이 하루 평균 4, 5명이 찾아오고 있다”며 “이번 4강 진출은 국민의 응원의 힘이 컸던 만큼 이비인후과 회원들에게 무료진료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고문을 발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