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제 식구’ 수사 맡다니…”

  • 입력 2002년 6월 26일 17시 54분


“마침 그 때,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탓할 수밖에 없다.”

김홍업(金弘業)씨 비리 의혹을 수사해 온 대검 중앙수사부 박만(朴滿) 수사기획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홍업씨의 비리에 연루된 ‘제 식구’를 수사해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조사하는 사람이나 조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조사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모두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김성환(金盛煥)씨가 검찰 고위 간부를 통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3건의 검찰 수사에 대해 강한 진상규명 의지를 표명했다. 전담 수사팀 발족 방침도 밝혔다.

박 기획관은 그동안 검사가 검사를 조사하는 ‘악연(惡緣)’을 자주 경험했다.

92년 14대 대선 직전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한 ‘초원복집사건’으로 물러난 뒤 서울지검에 소환된 김기춘(金淇春) 전 검찰총장을 직접 조사했다.

이어 대검 감찰1과장으로 근무하던 99년에는 ‘옷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돼 직전에 사표를 제출한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과 박주선(朴柱宣) 전 대통령법무비서관의 진술서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이용호(李容湖) 게이트’ 검찰 특별감찰본부에 파견돼 2000년 5월 이 사건을 수사했던 임휘윤(任彙潤) 전 부산고검장과 임양운(林梁云) 전 광주고검 차장 등에게서 직접 사표를 받기도 했다.

이번 수사팀에 파견된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의 김경수(金敬洙) 부부장 역시 지난해 이용호 특감본부에 이어 두 번째 조직 내부에 대한 조사를 맡게 됐다.

수사팀은 우선 의혹이 제기된 3건의 검찰 수사 기록을 정밀 검토한 뒤 당시 수사 관계자들을 직접 불러 진상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소환을 통보받은 당시 수사팀들이 “사건 처리는 외압이나 청탁 없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며 강하게 반발할 경우 검찰 조직이 또 한번 홍역을 치를 가능성도 있어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몸담고 있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라도 조사 대상자들이 ‘제 식구’에게서 조사받는 일을 거부하거나 불명예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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