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이런 감동과 자신감을 줄 수 있는지 미처 몰랐어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자원봉사센터에서 지난 한달여 동안 안내와 행정보조 등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김혜경씨(22·여·광운대 컴퓨터과학과 3년). 26일에도 그의 얼굴에는 전날 경기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가 월드컵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말을 들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대학에 입학한 뒤 자원봉사 공모를 손꼽아 기다리던 그는 지난해 8월 마침내 소원을 이뤘다. 무려 10 대 1의 경쟁을 뚫은 것이어서 기쁨은 더했다.
그러나 자원봉사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31일 개막식 때는 모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입장권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해 한참 동안이나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또 일부 언론에 자원봉사자들이 일은 하지 않고 선수들 사인만 받으려는 ‘오빠부대’라는 비난성 기사가 보도됐을 때는 너무 분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보람도 있었다.
외국인 할머니를 손짓 발짓을 곁들인 서툰 영어로 안내해준 뒤 “Thanks(고맙다)”라는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와 외국 언론이 ‘성공적인 월드컵’이라고 칭찬할 때는 “비로소 내 역할을 다했구나”라는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뻤을 때는 25일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때였다.
오전 9시에 출근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 대표팀 선수들 얼굴은커녕 운동장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나는 듯했다.
솔직히 대회가 개막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준결승에 한국팀이 올라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승리한 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꺾으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지만….
앞으로도 자원봉사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참여하겠다는 그는 “우리 선수들이 뛰는 모습에서 ‘하면 된다’라는 말이 구호만이 아님을 깨달았다”면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기억만으로도 앞으로 내 삶을 꾸려 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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