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 12번째 선수가 되자는 의미에서 ‘R’는 숫자 ‘12’가 연상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첫 글자 ‘R’와 마지막 글자 ‘s’가 만나도록 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월드컵을 치러내자는 뜻이고요.”
글씨를 도안한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박영철(朴榮哲·39·대전 서구 정림동·사진)씨. 대전에서 디자인 기획실을 운영하는 박씨는 지난해 4월 붉은 악마의 홍보 대행업체에서 디자인 제작을 제안받아 한 달 동안 고심한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글자가 영어인 까닭에 디자인에는 한국적 이미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윤곽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한국적 분위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붓글씨. 박씨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붓글씨를 배워 취미생활로 붓글씨를 써왔다. 그는 붓부터 특별히 준비했다. 갖고 있던 큰 붓의 털을 잘라 2002년 한일월드컵을 상징하는 의미로 2002개만 골라 다시 붓을 만든 것.
그는 강한 느낌의 글씨를 얻기 위해 한지 한 묶음을 가져다 수백 번이나 써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새벽 산행. 그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정성을 다한 끝에 나온 것이 지금의 글씨였다.
색상 배치도 심혈을 기울인 부분. 처음 박씨가 생각한 것은 흰 바탕에 붉은 글씨였다. 그러나 힘이 없어 보이고 산만한 느낌까지 줘 두 색을 정반대로 배치했다.
이 글씨는 현재 박씨의 미술저작물로 등록돼 있는데 최근 의류, 음료, 문구업체로부터 저작권 계약을 하자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박씨는 월드컵 기간에 허락 없이 자신의 글씨를 무단으로 사용한 업체들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는 등 권리 회복에 나섰다.
“이렇게 사랑을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제 글씨가 우리나라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잡아 축구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