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어떤 고마운 분의 신장을 제공받아 건강을 회복한 이후 나의 삶은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진정 소중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내 몸 어느 부분이라도 나눠 가지고 싶다.
하늘과 땅이 맞붙어버린 듯한 절망감 속에 언제인지 모를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기다리며 병상을 지키고 있는 1만여명의 말기 장기 부전증 환자들에게 월드컵 축구경기 기간 중 거리를 온통 붉게 물들였던 저 건강하고 힘찬 물결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그들에게 희망이란 없는 걸까.
정부가 2000년 2월부터 ‘장기이식법’을 시행한 이후 생체든 뇌사자든 장기기증의 혜택을 받아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의 수는 격감하고 말았다. 장기기증을 통합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는 장기이식 건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 음성적으로 시행되던 불법 장기밀매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뇌사자의 장기기증마저 1999년의 162명 수준에서 금년 상반기 13명으로 줄어든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민간의 각종 단체들이 힘을 모아 장기기증을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켜가면서 국민의 호응이 점차 뜨거워지자 국가는 장기이식을 합법화하고 불법 장기매매를 근절한다는 취지를 내세워 장기이식을 국가관리체제로 통합하는 장기이식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법은 결코 제정되지 말았어야 할 악법이었다. 기증장기의 효율적 배분보다는 불법 장기매매가 자행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방지하면서 그 책임의 대부분을 의사들에게 묻도록 한 잘못된 법이었다. 국민적 자발성이 낳은 소중한 열매를 국가가 가로채고는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못한 커다란 실수였다.
바쁜 와중에 복잡한 서류작업을 요구하는 데다 뇌사자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권유한들 자기 병원에서 수술할 수도 없으니 의사들이 신명날 리 없다.
어렵게 장기기증을 결심한 환자 가족들에게 배려는 못할망정 각종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지우니 이젠 다른 사람의 장기기증도 나서서 막겠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심각한 이식용 장기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장기기증 유료화까지 검토하기로 한 미국의학협회(AMA)의 얼마 전 결정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많은 환자들이 무관심 속에서 희망의 빛을 잃지 않도록 정부는 장기이식법을 폐지하고 민간 주도의 장기기증운동을 활성화시켜 주어야 한다.
이영렬 대한이식인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