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찰에 따르면 일선 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당시 부하 직원들로부터 수백만원의 뇌물을 받은 지방경찰청 A총경에 대한 경찰청의 감찰이 진행되던 4월, A총경이 경찰 고위간부 6명에게 자신이 받은 뇌물을 상납했다는 익명의 투서가 경찰청 감찰관실에 접수됐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감찰 조사를 벌여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 고위 간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A총경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리고 보직을 바꾸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해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은 이날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고 이름이 거명된 간부들에 대해 사흘간 철저히 조사했다”며 “그러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고 A총경도 상납 사실을 부인해 A총경을 정직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하루 전인 8일 이 청장은 물론 박학근(朴鶴根) 경찰청 감찰과장도 “A총경에 대한 나쁜 소문이 있어 감찰 조사를 벌여 정직 처분을 내린 사실은 있지만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상납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고 조사한 적도 없다”며 의혹 자체를 부인했었다.
이에 따라 경찰 총수가 경찰 간부의 고위 간부들에 대한 상납이라는 중대 사안을 조사한 것 자체를 숨긴 이유가 무엇이며, 경찰 수뇌부가 경찰의 자체 조사 결과대로 아무런 혐의가 없는지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경찰 고위 간부들은 모두 경무관급 이상으로 이번 사건 처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위치에 있다.
경찰청 하태신(河泰新) 감사관은 “당초 투서의 명의가 A총경으로 돼 있어서 감찰 조사를 압박하기 위해 낸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며 “일부 지방 언론에는 A총경이 상납 사실을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직 총경의 수뢰 사건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 조치를 취한 것은 통상적인 처리 관행으로 볼 때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조차 일고 있어 징계 수위에 관한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경찰의 감찰 조사는 일반 형사사건과는 달리 계좌추적이 불가능해 증거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며 당사자들이 혐의 내용을 부인하면 입증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하 감사관은 감찰 조사에 대해 “관련자들의 진술을 모두 받았고 당시 정황이나 현장조사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며 “8일 고위 간부들에 대한 감찰 조사 자체를 부인한 것은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