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비리 전면수사]기획사-TV '검은 돈' 추적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21분


검찰이 연예계 금품 수수 비리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서면서 방송 연예계에 일대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검찰은 4개 대형 기획사의 대표와 대주주를 출국금지조치하는 등 연예계 금품 수수 관행의 ‘원천’부터 파헤치겠다는 방침이어서 연예 기획사와 방송사 간의 유착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사배경과 전망= 검찰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금품수수 비리 및 상납 관행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대형 연예기획사의 자금 흐름 및 방송사 관계자 등과의 유착 관계를 밝히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공식 브리핑에서 대형 연예기획사를 ‘뿌리’에 비유하면서 매니저나 방송사 PD 등이 금품을 주고받는 개별적인 사건은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개개인의 비리를 밝히는 데 수사의 목적이 있지 않다”는 말도 했다. 비리 구조의 ‘근원’을 찾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연예기획사 가운데 ‘빅 4’로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 GM기획 도레미미디어 싸이더스는 그 뿌리의 핵심이며 이 4개 회사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연예계의 비리 전반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대형 연예기획사의 자금 출처 및 사용처, 코스닥 등록 과정, 주식 변동 상황 등을 추적하면 방송사 관계자 및 연예담당 기자 등에게 전달된 돈과 주식 등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6개월 이상 내사를 하면서 상당한 양의 첩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좌추적을 전담하는 수사팀을 따로 운영 중이다. 검찰 수사는 특히 이들 4개 회사 사주들의 비리를 밝히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사주가 회사 운영에 실질적으로 개입해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단서를 포착했다”고 말했다.

연예계의 비리 가운데서도 검찰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가요계의 상납 구조다. 검찰 관계자는 “내사 결과 가요계에서 의심스러운 돈의 흐름이 가장 많이 발견됐으며 그 규모도 컸다”고 말했다.

검찰은 새 가요앨범 홍보를 위해 쓰이는 이른바 ‘PR비’를 가요 프로그램 출연 청탁과 함께 받은 방송사 관계자 및 PD 등 여러 명의 신원을 이미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태= 그동안 방송사의 가요·오락 프로그램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빅 4’를 포함한 몇몇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올 초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가 가수가 출연하는 TV 오락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조사대상 51개 연예기획사 중 상위 15곳(매출액 기준)에 소속된 가수가 해당 오락프로그램 출연자의 약 70%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 기획사의 효시 격인 S사는 그룹 ‘신화’ ‘S.E.S’와 강타 보아 등을 보유하고 있고 G사는 가수 조성모를 지난해 말까지 관리하면서 거액을 벌어들였다.

또 다른 S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god’의 소속사다.

이들 업체는 자사의 간판가수를 특정 방송사에 출연시켜 시청률을 높여주는 대가로 신인 가수를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인지도를 올려 음반을 홍보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독식’해 왔고, 이 과정에서 방송사에 ‘PR비’를 건네온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형 기획사의 대표 등 핵심 관계자들은 평소 친분 있는 방송사 연예담당 PD와 고위 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 수색을 받은 한 기획사의 대표는 한 지상파 방송사의 부장급 PD에게 고급 승용차 등을 사주며 소속 가수 스타 만들기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몇몇 기획사가 코스닥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일부 방송사 PD 등에게 자사 주식을 뿌렸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한 가수 매니저는 “지난해 방송가에서는 ‘특정 기획사의 주식구경을 못하면 팔불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정도였다”고 전했다.한편 가요 관계자들은 “가요계가 최근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최악의 악재를 맞았다”며 사태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한 가수 매니저는 “당분간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고 가요계에도 ‘복중(伏中) 한파’가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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