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밝힌 에쓰오일 주가조작 수법

  • 입력 2002년 7월 18일 17시 10분


국내 3대 정유사의 하나이며 외국계 회사인 대기업이 주가 조작과 분식회계를 통해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특히 에쓰오일의 주가 조작은 1999년 12월부터 경찰의 압수수색이 실시된 5월까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졌지만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 등 감독 당국은 경찰 수사가 진행될 때까지도 이 같은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해 의혹이 일고 있다.

▽조직적인 주가 조작〓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에쓰오일의 주가 조작은 치밀하게 ‘준비된’ 작업이었다. 에쓰오일은 99년 12월 당시 1만5500원이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회사 돈 3390억원을 끌어들여 임직원 명의로 증권 계좌 2300개를 38개 증권사 109개 지점에 개설했다.

에쓰오일은 이후 이들 계좌를 통해 자사 주식 1020만주를 사들였으며 이 주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끌어 쓴 회사 돈을 메웠다. 이후 에쓰오일의 자사 보유 지분은 85%까지 올라갔다.

자사주를 사들인 이유는 주가 조작을 위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에쓰오일은 2000년 3월부터 본격적인 주가 조작에 들어가 김선동(金鮮東) 회장의 딸과 동창 등 14명의 명의를 빌려 증권 계좌를 만든 뒤 회사 돈 1000억원을 투입했다.

주가 조작은 회장실과 회의실 등에서 사이버 거래를 통해 이뤄졌으며 실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주문을 내는 고가(高價) 주문과 사들일 의사가 없으면서도 주문만 내는 허수 주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성사된 것처럼 속이는 가장 매매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됐다.

에쓰오일은 주식을 액면분할하기 직전인 지난해 말 주가를 5만6000원까지 끌어올렸으며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약 804억원(18일 종가기준)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가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에쓰오일이 사들인 주식을 주유소 사장들에게 ‘3년 동안 팔지 못한다’는 조건을 달아 일부는 매각했으며 대부분은 팔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며 “시세 차익을 실현하지 않았지만 오른 주가만큼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식회계와 비자금〓경찰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재고재산의 평가기준이 되는 휘발유 등 4개 유종의 판매가격을 올려서 장부에 적는 방법으로 당기순이익과 경상이익 등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에쓰오일의 지난해 경영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은 2163억원이었고 경상이익은 -88억원, 재고 평가손실은 -632억원, 당기순이익은 -77억원 등이었다. 그러나 회계 조작으로 경상이익은 293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은 191억원으로 둔갑했고 재고평가손실도 -251억원으로 400억원가량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에쓰오일 경영진은 지난해 미국 9·11테러 이후 원유값이 급등할 것으로 보고 원유를 대량으로 구매했지만 11월 이후 원유값이 떨어지면서 손실이 발생했다”며 “최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에서 문책받을 것이 두려워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고 말했다.한편 에쓰오일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기밀비 항목에서 30억원을 조성해 5월까지 13억원을 접대비로 쓰고 나머지 17억원을 차명계좌에 분산해 보관했다. 에쓰오일은 17억원을 자사주 주가 조작을 통해 68억원으로 불린 뒤 15명의 차명계좌에 보관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에쓰오일 해명〓에쓰오일은 이날 입장 발표문에서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매입했다는 혐의는 회사의 소유 및 지분구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서는 “주식을 팔아 시세 차익을 실현한 일이 없고 주가를 급등시키기 위한 변칙적인 매매 주문 및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이 없다”며 “에쓰오일 주가의 상승은 전체 주식 시장의 활황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밖에 회계장부 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매출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 분식회계를 한 것이 아니라 저평가된 보유재고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표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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