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중국 정부와 재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정부기관 항의방문과 현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어 ‘비밀 합의’의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22일 서울에서 농민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중 마늘밀실협약 규탄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전국 농민대회’를 갖기로 했다. 전농 측은 대회를 가진 뒤 외교통상부 등 관계기관을 항의 방문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전농은 성명을 통해 “정부는 중국과의 마늘 수입자유화 합의를 전면 백지화하고 생존의 갈림길에 선 마늘 농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마늘 생산량의 43%를 차지하는 전남지역을 비롯해 경북, 경남, 충북, 강원 등 주산지 농민들도 당장 내년부터 국내 마늘시장이 중국산으로 뒤덮이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북의 대표적인 마늘산지인 의성군 농민들은 19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다음달 2일 의성에서 경북 마늘재배 농민 총궐기대회를 갖기로 했다.
충북 단양마늘동호회 이명휘 회장은 “중국산 마늘의 세이프가드가 올해 말로 끝난다는 사실을 정부가 은폐한 것에 대해 분노한다”며 “조만간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다른 지역 재배농민들과 연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119개 마늘재배지역 농협조합장으로 구성된 ‘마늘전국협의회’는 18일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에서 긴급 운영위원회를 갖고 정부에 비밀협약의 진상을 규명할 것과 수입 마늘에 대한 관세 부과를 4년 간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전남 서남부채소농협 배종열 조합장은 “정부의 세이프가드로 지금까지 2만∼3만t에 머물던 수입 중국산 마늘이 내년부터 급격히 마늘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세이프가드로 농민들이 얻어온 500억원 이상의 소득증대 효과가 사라지게 된 만큼 보상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늘 주산지 자치단체들도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키로 하는 등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남 무안, 고흥, 신안, 함평, 고흥군을 비롯해 충남 서산시, 경북 의성, 경남 창녕, 남해군 등 전국 9개 시 군으로 구성된 ‘전국 마늘 주산단지 시군 광역협의회’는 금명간 긴급회의를 열고 마늘최저보장가격 인상, 마늘관세 4년 간 연장 등을 내용으로 한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기로 했다.
한편 전남도는 18일 청와대,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국회 및 각 정당 정책위 의장에게 마늘 긴급 관세 부과기간을 연장해줄 것과 이번 합의로 공산품에서 얻어지는 이익만큼 농업분야에 투자할 수 있도록 ‘농업소득보전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보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의성〓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김동태농림 "마늘협상 경위조사 책임자 문책"▼
김동태(金東泰) 농림부 장관은 18일 중국마늘 수입자유화 사안과 관련, “2000년 마늘협상에 참여했던 담당자를 불러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시행 당시의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마늘가격 안정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부의 방안을 설명했다.
김 장관은 “3년 전부터 시행 중인 최저가격보상제에 의한 전량 수매를 계속하고 중국산 수입마늘의 재수출을 확대하는 등 세이프가드 때보다 농민들의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강력한 가격안정대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산 마늘이 생산성과 가격, 품질 등 모든 면에서 한국산 마늘보다 우위에 있는 만큼 마늘종자 개량, 생산의 기계화, 유통비용 절감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 국내 마늘재배 농가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