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鄭雲燦·56·사진) 신임 서울대 총장은 22일 총장에 임명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대 본관 소회의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총장으로서의 포부와 각오를 밝혔다.
정 총장은 “서울대는 그동안 지성의 권위를 세우지 못한 채 안팎에서 휘둘려왔다”며 “앞으로 원칙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한편 내부적으로 민주적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고 부족한 재원 확보 등을 위해 발로 뛰는 총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또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의 균형 발전에 힘쓰고 침체된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총장으로 임명된 20일 공식 업무를 시작했으나 8월 1일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재원확보 발로 뛰겠다”▼
다음은 일문일답.
-총장이 된 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솔직히 두렵습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보냈고 지난 25년 동안(7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 생활의 근거를 제공한 학교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는데 막상 당선되고 임명장을 받으니 ‘잘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조완규(趙完圭) 전 총장이 어제 전화를 걸어와 ‘총장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명심하겠습니다.”
-‘개혁 성향의 총장’으로 불리는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이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개혁 성향의 총장’이라고 하면서 과격한 인상을 전달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입니다.”
-서울대의 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서울대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데 미흡했고 기능 위주로 변모해 ‘비(非)지성적 전문가’만 양산했습니다. 또 테크니컬한 지식은 많이 생산했지만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는지 의문입니다.”
-평소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는데….
“서울대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수들의 중지를 모아 설득을 통해 사회가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집단위 광역화나 학부제 등도 기본단위인 학부와 학과의 자율적 결정을 반영해 의논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습니다.”
-법대와 경영대, 의대의 전문대학원화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고시와 병역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도 경영학석사(MBA) 등을 길러낼 교수진을 확보하는 등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간과 여건이 마련돼야 비로소 가능할 겁니다.”
-기초학문과 실용학문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것입니까.
“학문의 이분법적 분리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두 학문은 불가분의 관계로 어느 한쪽에만 치중할 때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울대는 학문의 ‘종자 보관소’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전문대학원 당장은 곤란”▼
-침체된 인문학을 활성화할 계획은 있습니까.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합니다. 하향 평준화라는 오해도 있겠지만 잘하는 곳은 그냥 놔두고 잘 안 되는 곳은 끌어 올려야 합니다. 연구비 등의 지원이 더 많이 가도록 하는 것도 필요조건의 하나입니다. 또 교수에 대한 연구업적평가도 바꿔서 교육을 잘하는 교수도 평가받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가 주로 자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동종 교배’ 현실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과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그 조직이 발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무조건 신규 교수의 3분의 1을 타교 졸업생으로 뽑으라는 제도는 유연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 정권 들어 한국은행 총재직 등 정부 고위직을 계속 고사했는데 만약 총리직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온다면….
“임기 중엔 절대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 총장은 “임기가 끝난 뒤에는 맡겠다는 의미입니까”라는 보충질문이 이어지자 “스승인 조순(趙淳) 선생은 ‘내일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학교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