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서울大총장 회견 “침제된 인문학 살리기 최선”

  • 입력 2002년 7월 22일 18시 39분


“총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대에 대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정운찬(鄭雲燦·56·사진) 신임 서울대 총장은 22일 총장에 임명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대 본관 소회의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총장으로서의 포부와 각오를 밝혔다.

정 총장은 “서울대는 그동안 지성의 권위를 세우지 못한 채 안팎에서 휘둘려왔다”며 “앞으로 원칙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한편 내부적으로 민주적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고 부족한 재원 확보 등을 위해 발로 뛰는 총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또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의 균형 발전에 힘쓰고 침체된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총장으로 임명된 20일 공식 업무를 시작했으나 8월 1일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재원확보 발로 뛰겠다”▼

다음은 일문일답.

-총장이 된 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솔직히 두렵습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보냈고 지난 25년 동안(7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 생활의 근거를 제공한 학교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는데 막상 당선되고 임명장을 받으니 ‘잘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조완규(趙完圭) 전 총장이 어제 전화를 걸어와 ‘총장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명심하겠습니다.”

-‘개혁 성향의 총장’으로 불리는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이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개혁 성향의 총장’이라고 하면서 과격한 인상을 전달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입니다.”

-서울대의 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서울대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데 미흡했고 기능 위주로 변모해 ‘비(非)지성적 전문가’만 양산했습니다. 또 테크니컬한 지식은 많이 생산했지만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는지 의문입니다.”

-평소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는데….

“서울대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수들의 중지를 모아 설득을 통해 사회가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집단위 광역화나 학부제 등도 기본단위인 학부와 학과의 자율적 결정을 반영해 의논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습니다.”

-법대와 경영대, 의대의 전문대학원화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고시와 병역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도 경영학석사(MBA) 등을 길러낼 교수진을 확보하는 등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간과 여건이 마련돼야 비로소 가능할 겁니다.”

-기초학문과 실용학문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것입니까.

“학문의 이분법적 분리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두 학문은 불가분의 관계로 어느 한쪽에만 치중할 때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울대는 학문의 ‘종자 보관소’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전문대학원 당장은 곤란”▼

-침체된 인문학을 활성화할 계획은 있습니까.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합니다. 하향 평준화라는 오해도 있겠지만 잘하는 곳은 그냥 놔두고 잘 안 되는 곳은 끌어 올려야 합니다. 연구비 등의 지원이 더 많이 가도록 하는 것도 필요조건의 하나입니다. 또 교수에 대한 연구업적평가도 바꿔서 교육을 잘하는 교수도 평가받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가 주로 자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동종 교배’ 현실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과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그 조직이 발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무조건 신규 교수의 3분의 1을 타교 졸업생으로 뽑으라는 제도는 유연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 정권 들어 한국은행 총재직 등 정부 고위직을 계속 고사했는데 만약 총리직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온다면….

“임기 중엔 절대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 총장은 “임기가 끝난 뒤에는 맡겠다는 의미입니까”라는 보충질문이 이어지자 “스승인 조순(趙淳) 선생은 ‘내일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학교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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