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김창규(金昌奎)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20대 전직 군인 3명이 울먹이며 자신들이 겪은 악몽 같은 일들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았다.
총기 절도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고 하루 전날인 24일까지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던 정모 전 중사(27)와 공범으로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해 5월 가석방된 최모 전 중사(27), 이모 전 하사(28) 등 3명.
▼대법원 유죄판결 뒤집어▼
이들은 “수사관들의 가혹 행위 때문에 진실이 왜곡됐다”며 재심을 청구,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4일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뒤집고 사실상의 무죄 확정선고를 받아냈다.
강원 화천군에 있는 군부대에 근무했던 이들은 98년 8월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분실사고의 범인으로 지목돼 영장도 없이 함께 체포됐다.
정 중사 등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가혹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자백을 강요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고 잠도 하루에 2시간 이상 잘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허위자백을 하고 말았다.
상사를 골탕먹이기 위해 소총을 훔치고 이를 이용해 ‘한탕’ 하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사실이 조작됐다. 군용물 특수절도 및 강도음모 등 무려 9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더욱 황당한 것은 총기가 어디 있는지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가 추가돼 군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한마디로 ‘괘씸죄’였다.
게다가 대법원은 상고심 진행 중에 수사관들의 가혹행위가 유죄로 인정됐는데도 구체적인 기록 검토를 거부한 채 징역 5년을 확정선고했다.
그러나 억울한 옥살이를 계속할 수 없었다. 이들은 곧바로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다시 재판을 받을 기회를 얻어냈다. 다시 피를 말리는 법정싸움이 1년 이상 계속됐다.
마침내 24일 서울고법 형사4부(구욱서·具旭書 부장판사)는 “정 중사 등의 자백은 불법 체포, 구금된 뒤 수사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받은 상태에서 이뤄졌으므로 총기절도 범죄를 입증할 증거능력이 없다”며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이들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목격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정 전 중사는 25일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또 이 전 하사는 “온몸이 묶인 채 시멘트 바닥에 개처럼 주저앉아 밥을 먹으면서 이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생각했다”며 울먹였다.
▼“진실 밝히자” 악으로 버텨▼
옆에서 눈물을 흘리던 정 전 중사의 아버지는 “수사관들과 군 검찰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생각이지만 아들의 잃어버린 젊음은 누가 배상해 줄 것이냐”며 분개했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무죄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를 맡았던 김창규 변호사는 “폐쇄되고 경직된 군부대와 군사법정의 특수성을 감안해 1심에서의 법정자백까지 배척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