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버스’ 요금 올리면 해결되나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45분


‘요금 인상만이 능사인가.’서울시는 10월경 시내버스 요금을 100원가량(도시형 기준) 인상할 예정이지만 버스업체들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그 정도 올려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가용 승용차 증가와 지하철 노선 확충 등으로 인해 해마다 버스 승객이 급감해 업체들이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 운전사와 정비사 등은 임금 수준이 낮다며 직장을 떠나고, 운행하지 않는 버스가 증가하면서 배차 간격은 계속 늘어나 승객들의 불편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내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버스 운행 속도를 높이고 환승 혜택을 확대하는 등 버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잠자는 버스들〓대학생 이모씨(25·서울 동대문구 이문동)는 휴일인 21일 오전 종로에 가기 위해 한국외국어대 앞에서 134번 버스를 20분 이상 기다리다 결국 약속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씨는 134번 버스를 운행하는 서부운수에 항의 전화를 했지만 “승객이 없는데 어떻게 평일과 똑같이 배차간격을 맞출 수 있느냐”는 답을 들었다.

서부운수 신정균(申丁均·62) 상무는 “지난해 지하철 6호선이 개통돼 증산역이 버스 종점(서대문구 북가좌동) 앞에 들어서면서 수입이 크게 줄었다”며 “방학인 요즘 휴일에는 승객이 없어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65대의 버스 중 20대 정도는 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버스사업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관련 업체의 버스 8179대 가운데 15.6%인 1278대가 운행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버스업체의 적자〓현재 서울의 시내버스 업체는 모두 59곳이다. 5년 전인 1997년만 해도 89곳에 달했으나 적자에 허덕이다 부도를 내고 면허를 뺏기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된 탓에 업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

남아 있는 업체들도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결산 결과 8개사는 자본금은 완전히 까먹었고, 18개사도 자본 부분잠식 상태에 빠졌다.

서울버스사업조합 조병완(曺秉完·44) 과장은 “나머지 업체도 시의 구조조정 압력을 피하기 위해 자산재평가 등 고육책을 써 회계장부상으로만 흑자를 낸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가 어렵다보니 직원들의 근무 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41개사가 급여 상여금 퇴직금 등 200억원의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

일은 힘들고 돈도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운전사들은 경력을 쌓은 뒤 전세버스 운전사나 트럭을 직접 모는 자영업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6월말 현재 서울 시내버스 전체 인원은 1만6241명으로 이는 적정 인원보다 3700명 정도가 부족하다.

▽해결 방안〓전문가와 업계는 요금만 인상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요금을 올리면 승객 감소→임금 억제→운전사 이직→가동률 저하→배차간격 확대→승객 감소 등의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황기연(黃祺淵) 박사는 “결국 버스의 자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며 △버스 전용차로를 중앙선쪽으로 옮겨 속도를 높여주는 버스 중앙차로제 확대 실시 △지하철 등 타 교통수단으로 갈아탈 경우 환승혜택 확대 △버스 내부환경 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시는 장기적으로는 ‘황금노선’은 돈을 받고 팔며, 공익상 유지할 필요가 있는 적자노선은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주는 ‘노선 입찰제’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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