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마임’의 대표이자 소극장 ‘돌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상숙씨(43·여)는 소극장의 앞날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1979년 인천 중구 경동에 50여평 규모로 문을 연 돌체는 23년 동안 줄곧 한 자리를 지켜오면서 인천 문화계 발전의 밑거름이 돼왔다.
그러나 최근 확정된 소극장앞 소방도로 확장 공사로 올해나 내년 초 소극장이 세들어 있는 건물이 헐릴 위기를 맞게되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사 건물의 일부만 헐린다 해도 무대(가로 6m 세로 4m)가 1∼2m 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더 이상 소극장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없게 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는 다른 건물 임대는 꿈도 못 꾼다.
하지만 10여명의 극단 식구들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10월 16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릴 작품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박씨는 “4∼5년 동안 기획자로 일하느라 무대에 오르지 못해 기대와 설레임이 남다르다”며 “임대료 때문에 문예회관에서 이틀만 공연한 후 돌체에서 한 달 정도 공연할 계획이었지만 언제 철거통보가 전해질지 몰라 공연일정을 잡을 수 없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극단 마임은 1980년대 ‘클라운 마임’(clownmime)’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
클라운마임은 대사 없이 몸동작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팬토마임’(Pantomime)과 같지만 마술 등 서커스적인 요소가 가미된 점이 달랐다.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박씨는 관객에게 보다 쉽고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연극계 선배인 남편 최규호씨(44)와 함께 무대에 올라 실험정신을 마음껏 발산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전국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돌체 소극장은 이 때부터 ‘마임 교육장’으로 명성을 쌓았고 1995년부터는 매년 ‘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개최하는 등 지역 연극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도 한 몫을 했다. 특히 경동예술극장 미추홀소극장 신포아트홀 배다리예술극장 등 5∼6개의 소극장이 잇따라 중구지역에 들어서며 80년대 ‘소극장 전성시대’의 물꼬를 튼 주역이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성찬씨를 비롯해 100여명의 연기자들이 이 시절 돌체를 거쳐갔다.
하지만 지역 연극계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어려움이 더 많았다.
1980년대 말을 정점으로 소극장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관객의 관심이 줄기 시작하면서 돌체를 제외한 이 지역 나머지 소극장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 차례로 사라져 갔다.
다행히 최근 ‘돌체만은 살리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해반문화사랑회 등 일부 시민단체들이 힘을 보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장소 마련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연극협회 이상희 회장(42) 은 “돌체는 지역 연극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이라며 “모두들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행정기관과 민간기업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돌체를 지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