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문화명소 ‘돌체’ 사라지나

  • 입력 2002년 7월 29일 21시 23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20년 넘게 지켜왔는데…”

극단 ‘마임’의 대표이자 소극장 ‘돌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상숙씨(43·여)는 소극장의 앞날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1979년 인천 중구 경동에 50여평 규모로 문을 연 돌체는 23년 동안 줄곧 한 자리를 지켜오면서 인천 문화계 발전의 밑거름이 돼왔다.

그러나 최근 확정된 소극장앞 소방도로 확장 공사로 올해나 내년 초 소극장이 세들어 있는 건물이 헐릴 위기를 맞게되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사 건물의 일부만 헐린다 해도 무대(가로 6m 세로 4m)가 1∼2m 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더 이상 소극장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없게 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는 다른 건물 임대는 꿈도 못 꾼다.

하지만 10여명의 극단 식구들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10월 16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릴 작품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박씨는 “4∼5년 동안 기획자로 일하느라 무대에 오르지 못해 기대와 설레임이 남다르다”며 “임대료 때문에 문예회관에서 이틀만 공연한 후 돌체에서 한 달 정도 공연할 계획이었지만 언제 철거통보가 전해질지 몰라 공연일정을 잡을 수 없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극단 마임은 1980년대 ‘클라운 마임’(clownmime)’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

클라운마임은 대사 없이 몸동작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팬토마임’(Pantomime)과 같지만 마술 등 서커스적인 요소가 가미된 점이 달랐다.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박씨는 관객에게 보다 쉽고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연극계 선배인 남편 최규호씨(44)와 함께 무대에 올라 실험정신을 마음껏 발산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전국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돌체 소극장은 이 때부터 ‘마임 교육장’으로 명성을 쌓았고 1995년부터는 매년 ‘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개최하는 등 지역 연극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도 한 몫을 했다. 특히 경동예술극장 미추홀소극장 신포아트홀 배다리예술극장 등 5∼6개의 소극장이 잇따라 중구지역에 들어서며 80년대 ‘소극장 전성시대’의 물꼬를 튼 주역이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성찬씨를 비롯해 100여명의 연기자들이 이 시절 돌체를 거쳐갔다.

하지만 지역 연극계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어려움이 더 많았다.

1980년대 말을 정점으로 소극장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관객의 관심이 줄기 시작하면서 돌체를 제외한 이 지역 나머지 소극장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 차례로 사라져 갔다.

다행히 최근 ‘돌체만은 살리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해반문화사랑회 등 일부 시민단체들이 힘을 보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장소 마련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연극협회 이상희 회장(42) 은 “돌체는 지역 연극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이라며 “모두들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행정기관과 민간기업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돌체를 지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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