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시장 “덕수궁터 美아파트 法에 따라야”

  • 입력 2002년 7월 30일 23시 21분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직원용 8층짜리 아파트를 지으려는 미국측 방침에 반대해온 기존 발언과 달리 적극적으로 반대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시장은 30일 취재진과 만나 “덕수궁터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 문제는 관련 법규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며 “단순히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서 서울시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 시장이 취임 전이나 취임 직후 “미 대사관 직원 숙소를 덕수궁터에 짓는 것은 이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재 보존문제 등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미국측의 관련법 개정 요구도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반대해온 견해에서 후퇴한 것이다.

그간 서울시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힐 것을 요구해온 ‘덕수궁터 미 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를 위한 시민모임’은 “시장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비난했다.

이 시장은 이날 “이 문제는 건설교통부의 주택건설촉진법과 서울시가 관할하는 문화재관리법 등에 따르면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굳이 서울시가 나서서 ‘된다’ ‘안 된다’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다만 85년 서울시가 미 대사관측과 작성한 양해각서가 있어 서울시로서도 입장이 난처한 대목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또 “대체부지에 대해서도 미국측이 먼저 원한다고 해야 그때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지 서울시가 먼저 나설 수 없는 일”이라며 “미 대사관 아파트문제는 서울시보다는 외교통상부가 대화상대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또 ‘정동 등지에 문화재가 많아 더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러시아대사관도 신축됐는데 그 안에 학교 등 시설이 있다”며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를 건립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 듯한 견해를 보였다.

이 시장은 한편으로는 “서울시 문화재관리법에 의거, 덕수궁터 지표조사 등을 하는 과정을 5년이고 10년이고 끌게 된다면 어차피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문제 아니냐”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덕수궁 터 아파트 건립 논란은 미 대사관이 현재 세종로 건물이 낡고 비좁다는 이유로 덕수궁 터에 연면적 5만4000평(지상 15층, 지하 2층)의 대사관 건물과 54가구 규모의 직원 숙소용 8층 아파트를 짓겠다며 5월 건교부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불거졌다.

건교부는 미 대사관 신축은 외교 관례상 허용하고 직원용 아파트 역시 외교관 시설인 만큼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에 예외조항을 신설해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반대 여론이 커지자 허용 계획을 철회했었다.

그러나 미 대사관 측은 26일에도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 건물을 신축하고 직원용 아파트를 지을 방침임을 거듭 밝혔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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